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성경에 채색삽화를 넣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전통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이러한 성경은 주로 소장처 이름에 따라 명명되는데, 이번에 소개하는 채색삽화는 프랑스 무티에 그랑발 수도원에 소장된 것으로 ‘무티에 그랑발 성경’이라 불린다. 840년경 프랑스의 뚜르에 있는 수도원에서 제작된 이 성경은 16세기에 무티에 그랑발 수도원으로 옮겨졌다가 1836년 이후에 영국의 대영박물관으로, 현재는 대영도서관British Library에 소장되어 있다.
이 성경에는 신구약에 관한 4장의 전면全面 삽도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에 소개된 그림은 맨 앞에 위치한 창세기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의 창조에서부터 불순종으로 인한 타락까지를 그 내용으로 하며, 그림의 제목은 <아담과 이브>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중세 프랑스 카롤링거 왕조의 오직 두 점 남은, 가장 오래된 채색삽화 중 하나라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 4단으로 나뉘어 이야기 식으로 전개되는데, 성경이 일부 성직자들에게만 허용되던 시기에 글 모르는 일반인들에게 성경의 내용을 쉽게 전할 수 있도록 무척 자세하게 묘사한 고풍스러운 그림이다.
창세기를 한 구절씩 따라가며 그림으로 읽어 보면 색다른 은혜가 있을 것이다. 맨 윗단에는 지구상에 인류가 창조되는 엄숙한 장면이 오히려 정감 있게 묘사된다. 두 천사가 지켜보는 가운데 빨간 옷을 입으신 하나님이 마치 조각가가 작품을 다루듯 허리를 굽혀 아담을 에덴에 두시는 장면2:7~14, 팔을 괴고 자고 있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하와를 만드시는 장면2:21을 볼 수 있다. 둘째 단 왼쪽은 아담이 하와에게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오른쪽은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2:22~25라는 구절을 묘사한 사랑과 평화의 장면이다. 셋째 단 왼쪽은 뱀이 하와를 유혹하고 두 사람이 선악과를 나누어 먹는 장면3:1~6과 함께, 선악과를 따 먹은 후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 실제로 들리는 듯 매우 솔직하게 표현되어 있다. 부끄러움을 알게 된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손가락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 아직 저주받기 전이라 꼿꼿이 서 있는 뱀의 표현이 흥미롭다3:7~13. 그리고 맨 아랫단 왼쪽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지어 주신 가죽 옷을 입고 에덴에서 추방되는 장면이다. 그 오른쪽 그림은 하와로 인해 여자에게 임신과 출산의 고통이 더해지며, 아담으로 인해 남자는 평생 수고해야 땅의 소산을 먹으리라는 하나님의 선언조차3:14~24 우리를 향한 사랑의 장치임이 느껴지는 목가적인 분위기로 묘사되었다.
중세에는 누드화를 거의 그리지 않았는데, 예외적으로 이 삽화에는 아담과 하와를 누드로 그렸으며, 비록 구별이 분명치는 않으나 아담과 하와가 한 화면에 여러 차례 등장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에 존재했던 서양의 설화식說話式 표현으로 동양의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과 유사하다. 표현은 평면적이고 약간 만화같이 그려져, 이전의 그리스·로마 미술의 세련된 표현 방식이 부족한 것은 주제의 전달에 집중했던 기독교 미술의 의도와 지역적으로 떨어진 프랑스의 지방색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창세기를 다시 읽으며 하나님의 자리에서 날마다 선악을 판단하는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시며, 끝없이 참으시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있는 곳, 그 은혜의 강가로 오늘도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