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십자가를 올림Raising of the Cross’이라는 주제는 갈보리 언덕 위에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올려 세우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다. 복음서에서는 십자가를 세우는 장면을 깊이 있게 다루지 않지만, 이는 중세 비잔틴 시대부터 화가들이 꾸준히 그려 왔던 주제이다. 이 주제를 다룬 화가들은 시편 22편을 참고하여 그곳에 절절히 묘사된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그림에 담아내었다.
이것은 13세기부터 예수님이 갈보리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장면을 그린 갈보리 연작Calvary Cycle 중의 한 장면이 되었다. 또한 독일, 네덜란드 지역에서는 명상 주제 중 하나인 ‘고통 받는 예수’의 한 장면으로 이를 제작해 명상하곤 했다.
1611년에 루벤스가 그린 이 제단화는 현재 벨기에의 앤트워프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으며, 이 대성당에 있는 4개의 제단화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양쪽 면을 열고 닫을 수 있는 세 폭 제단화인데, 중앙 면에는 9명의 집행자들이 예수님의 육체가 못 박혀 있는 십자가를 끌어 올리고 있다. 왼쪽 면에는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앞에 울고 있는 여인들과 아이들이 보인다. 오른쪽 면에는 두 강도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는 로마 군인들과 말 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로마 관원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루벤스는 현재의 벨기에인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했던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에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활동하다가 고향인 앤트워프로 돌아왔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이탈리아 바로크 스타일을 독일, 네덜란드 지역에 소개했다. 조화와 균형이 특징인 르네상스 미술에 반하여 바로크 시대 미술은 과격한 운동감과 역동성, 극적인 효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 제단화에서는 이러한 바로크 시대 미술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중앙 면을 다시 보면 십자가를 끌어 올리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는 인부들의 노력과 팽팽한 긴장감이 예수님의 창백한 몸과 대조된다. 인부들의 뒤틀리고 번들거리는 육체를 통해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하고 강렬하게 표현되었다. 특히 예수님이 매달리신 십자가는 중앙의 화면을 대각선으로 분할하고 있는데, 이 또한 사선구도로 역동성을 극대화하려는 바로크 미술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기법 중 하나다.
왼쪽 면의 애도하는 인물들, 오른쪽 면의 말에서 바로 멈춘 듯한 로마 관원의 모습에서도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극적인 효과와 드라마틱한 몸짓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의상에 빨강, 파랑 등의 원색을 사용한 점, 무기와 의상에서 내뿜는 광채, 화면의 앞뒤를 빛과 어둠으로 대조한 표현 등에는 재능이 만개했던 루벤스 초기 시절의 자신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십자가 처형이라는 극적인 순간은 예수님께는 사명의 완성을 눈앞에 둔 비장한 순간이며, 성도들에게는 의지할 대상이 사라진 듯한 슬프고 두렵고 떨리는 순간이다. 루벤스는 바로크 미술의 긴장감과 역동성을 활용하여 예수님의 고통뿐 아니라 당시 사건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 현장의 긴박감과 긴장감을 감동적으로 잘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