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과 함께 저녁을 드신 것이 최후의 만찬이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식사를 하시면서, 예수님은 떡이 자신의 몸이고 포도주는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라고 말씀하시며 이를 행함으로 주님을 기념하라 하셨다. 또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손수 씻기셨고,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남기셨으며, 가룟 유다의 배반도 예고하셨다.
지금까지 많은 화가가 최후의 만찬을 그렸는데, 그중에서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라 그라찌에 수도원 식당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품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최후의 만찬이 아닌, 미국과 한국에서 20세기에 그려진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성화는 각 지역의 고유한 풍습이나 문화적 특성이 반영되어 더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 왼쪽은 미국의 인디언 화가였던 월터 리차드 웨스트Walter Richard West, 1912~1996의 작품이다. 웨스트는 1947년부터 1970년까지 베이콘 대학에서, 1970년부터 1977년까지는 헤스켈의 인디언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인디언 출신답게 인디언을 주인공으로 하여 독특하고 재치 있게 성화를 표현했다.
인디언의 천막인 티피 안에서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제자들은 모두 인디언 복장들을 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을 일렬로 앉힌 다빈치의 표현과 달리, 웨스트는 방석을 깔고 바닥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모습으로 처리했다. 중앙의 화로와 토기들은 인디언의 친숙한 풍습과 생활을 떠올리게 하여 인디언들이 성화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일찍이 한국에서도 성화를 한국적인 분위기로 표현한 작가들이 있었다. 현재는 더욱 많아졌지만, 초기의 대표적인 작가로는 김기창과 김학수 화백을 꼽을 수 있다. 오른쪽 그림은 김기창의 작품인데, 그는 예수님의 일생 전체를 성화로 그려 한국적 성화 제작의 모범을 보였다. 전체 구성은 한옥의 대청마루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한복을 입고 삿갓을 쓰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잘 다듬어진 한옥 처리와 앞쪽의 멋진 대나무가 정취를 더하고 있다. 인물들이 둥글게 둘러앉아 있는데, 그 가운데 한국식 교자상을 볼 수 있다. 예수님에게만 광배光背를 그려 특별히 구별했고, 당황하며 근심하는 제자들의 표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 두 작품에서 누가 어떤 제자인지는 각자의 상상에 맡긴다.
‘최후의 만찬’에 관한 그림이나 성경 내용은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베어만 할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죽어 가는 소녀를 위해 비바람 몰아치는 추운 겨울 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에 그린 나뭇잎 하나, 그 그림으로 인해 다음날부터 소녀는 회복되어 가고 늙은 화가는 감기와 폐렴으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그린 마지막 나뭇잎이 한 생명을 살린 것처럼, 우리의 헌신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예수님은 지금도 기대하고 계시지 않을까? 그분이 자신의 살과 피를 모두 내어 주심으로 제자들을, 우리를 죄악에서 살리셨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