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시작하기 직전,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는 산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데리고 오르셨다. 이 산은 현재 다볼 산이라 하기도 하고, 헐몬 산이라고도 하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예수님은 흰빛을 발하시며 광채 속에서 변형된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이야기를 나누시는 기적을 보이셨다. 이 장면은 마태복음 17장과 마가복음 9장 그리고 누가복음 9장에 나오는데, 원래 하늘 보좌에 계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극적인 순간을 바라본 베드로는 그곳에 세 개의 초막을 짓고 머물면 좋겠다면서 내려가기를 싫어했다.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와 함께 산 아래로 내려오셨을 때, 그곳에 남아 있던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데려와서 자신들이 할 수 없으니 예수님께 귀신을 쫓아 달라고 요청했다. 예수님은 믿음 없는 세대를 탄식하며 아이를 고쳐 주신다.
이 이야기를 모두 한 폭에 담은 것이 라파엘의 <예수님의 변용>이라는 작품이다. 그림의 윗부분에는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하늘에 계신 모습이 밝은 구름을 배경으로 유영하듯 떠 있다. 그 아래에는 위에서 언급한 세 제자가 눈이 부셔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 아래 오른쪽 부분에는 귀신 들린 아이와 사람들이 있고, 왼쪽 부분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들이 아이를 고쳐 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라파엘은 주제를 크게 상하로 나누고 다시 아랫부분을 좌우로 나누면서 균등분할과 좌우대칭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르네상스적인 구도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밝고 어두움이 강렬하며 바탕을 매우 어둡게 한 것은 바로크적인 감각으로, 카라바조 회화의 원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뒤틀림과 변형이 보이는 전경의 여인과 아이의 모습은 매너리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이 그림은 라파엘이 사망하기 직전에 그린 것이기에 일반적인 그의 그림과는 약간 다르다. 명암의 대비가 강렬하고, 바탕을 검게 한다든지 변형을 약간 시도하는 것 등은 이미 새로운 사조를 배태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변화산의 사건은 의미가 크다. 하늘에서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와 같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마 17:5)라는 음성이 들린다. 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하늘로부터 하나님이 들려주신 확인과 격려의 메시지이다. 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에 하나님이 친히 예수님의 본질을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그래서 율법의 상징인 모세와 예언의 상징인 엘리야까지 등장시켜 예수님이 율법과 예언을 다 이루시는 분임을 밝혀 주신 것이다.
이는 십자가 고난이 시작되기 전 예수님의 마지막 화려했던 순간이며,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히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변화산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시는데, 겨자씨만 한 믿음만 있어도 아이를 낫게 할 수 있다고 강조하신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일이 코앞에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 자리에 초막이나 짓고 안주하겠다는 베드로와 겨자씨만 한 믿음도 없는 제자들의 모습은 곧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라파엘의 이 그림은 두 사건을 동시에 보게 하면서, 믿음 없고 근시안적인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