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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8월

그뤼네발트의 이젠하임 제단화

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모습은 여러 화가가 다투어 그렸지만 마티스 그뤼네발트의 성화처럼 참혹한 모습으로 그려져 많은 사람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작품도 별로 없다. 이 작품은 그뤼네발트가 프랑스의 이젠하임에 있는 성 안토니오 수도원의 의뢰로 제작하여 1515년에 수도원 병원 예배당의 제단화로 설치한 것이다.

이 제단화는 열고 닫히는 형태로 모두 10개의 패널로 되어 있다. 여기에 제시된 장면은 닫힌 것으로, 주중이나 사순절을 포함한 주일에 전시되었던 것이다. 중앙에 <십자가의 책형>이 있고 좌우에 <성 안토니오>와 <성 세바스찬>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아래 받침 부분에 <애도>가 그려져 있다. 이 화면을 열면 다시 <수태고지>와 <부활>, <천사들의 연주>와 <그리스도의 탄생> 등 구원이나 부활을 의미하는 밝은 내용의 그림이 나타난다.

이 그림을 그린 그뤼네발트1455/1480~1528년는 정확한 출생 연도를 비롯해 생애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작가이다. 본명은 ‘마티스 고트하르트 니트하르트’이고, 북구 르네상스 시기에 독일을 대표하는 화가였다. 그림이 많이 전해지고 있진 않은데 그중에서 이젠하임 제단화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안토니오 수도원은 성 안토니오의 구제 사업의 정신을 계승하는데, 특히 호밀의 곰팡이에 의한 피부병인 맥각증과 같은 병을 치료해 주는 기관이었다. 따라서 이 그림들은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예수님의 몸이 피부병에 걸린 피부처럼 실감나게 표현되어 있다. 중앙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의 온몸이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 나오는 것처럼 심한 상처로 뒤덮여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을 가리키면서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리라”라고 말하는 세례 요한이 있고, 그 아래에 어린 양이 피를 흘리고 있다. 원래는 세례 요한이 이 자리에 없었으나 화가가 실제를 초월하여 표현한 것이다.  

왼쪽에는 허리를 뒤로 크게 젖힌 성모 마리아를 사도 요한이 부축하고 있고, 그 아래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릎 꿇고 애처롭게 기도하고 있다. 왼쪽의 성 세바스찬은 흑사병을, 오른쪽의 성 안토니오는 맥각증을 치료해 준다는 치유의 수호성인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모두 병원의 환자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는 목적에서 선택되었음을 알 수 있다.

맨 아래 받침대에도 그림이 있는데 십자가에서 내려진 후의 예수님의 모습이다. <애도>라고 하는 이 장면에서는 사도 요한이 뒤를 받치고 있으며, 그 앞에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앉아 있다. 관 옆에 앉은 이들은 비통해하며 오열하고 있다. 돌아가신 예수님과 그 주위에서 오열하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의 슬픔이 진하게 전달된다.

그뤼네발트는 예수님의 고통과 치욕을 리얼하게 강조했으며 전혀 미화하지 않았다. 극도로 슬픔이 깔려 있는 화면은 환자들에게 공감과 깨달음의 순간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모진 고통 속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수밖에 없었던 예수님을 보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과 같이 우리의 죄와 욕심, 질병과 고통, 무지와 고정관념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주님의 십자가를 짐으로 주님과 함께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것을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