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09년 07월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과월호 보기 한정희(홍익대 미술대학 교수)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면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시는 공생애를 시작하신다. 그러므로 이 순간은 매우 장엄하며 의미가 크다. 성경에도 이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 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순간을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리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을 그린 성화가 많지만 그중에서 르네상스 초기의 이탈리아 화가였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약 1420~1492년의 <그리스도의 세례>왼쪽 그림가 대표적이다. 나무 옆에서 예수님이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시고, 왼쪽에 세 명의 천사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머리 위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떠 있는데, 이것은 위의 성경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에서 화가는 기쁨으로 충만한 듯 화면을 밝게 처리했고, 비례와 균등분할 등을 매우 정교하게 다루었다. 이것은 화가가 새로운 원근 투시법에 밝았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는 『투시화법에 대하여』와 같은 책도 저술했으며 이탈리아 화가로서는 일찍 유화기법도 사용했다. 예수님의 머리에 후광도 생략하고 인물들의 크기를 다 똑같이 한 것은 모두 르네상스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세례 장면 뒤로는 세례 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 보이며, 그 뒤편에는 이국적인 동방의 복장을 한 인물들이 서 있다. 배경에는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방의 경치가 그려져 요단강이 아닌 화가의 고향 경치로 대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발 주변에 있는 식물들은 약초로 치유의 의미를 지닌다.
이보다 약간 이른 시기에 같은 토스카나 지방에서 활동했던 프라 안젤리코약 1395~1455년도 예수님의 세례 받는 장면을 그렸는데오른쪽 그림 다소 고풍스럽게 표현했다. 강을 크게 그리고 괴량감 있는 바위가 배경을 이루는 것은 르네상스 미술의 선구자였던 지오토의 바위를 연상케 한다. 바위를 딛고 요한이 후광을 두른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푸는데 이런 자태는 중세의 고딕적인 표현이다. 천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받아 들고 공손하게 대기하는 모습도 비잔틴 이후로 계속된 전통적인 표현이다. 하늘에 비둘기인 성령이 회오리바람처럼 일어나는 것은 이색적이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은 고식古式이나 분위기가 경건하고 진지하다. 반면 프란체스카의 그림은 훨씬 현실감 있고 경쾌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파란 하늘과 구름들 그리고 무성한 나무, 여인을 연상시키는 천사들의 자태는 사실감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새로운 세계이다.
같은 주제이나 그린 사람에 따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세례는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인간의 모습으로 낮아지는 지점이자 인류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는 장엄한 순간이다. 이로부터 3년 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을 생각하면 고난이 시작되는 안타까운 순간이기도 하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