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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일본의 초기 성화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근세에 들어와서 동아시아에 서양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은 일본이었다. 예수회가 창설되고 나서 얼마 후 1549년 8월에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 자비에르가 일본의 가고시마에 상륙한 것이 계기였다. 일본 선교에 성과를 거둔 자비에르는 보다 넓고 큰 국가인 중국에도 선교하기 위해 3년 후 광동 앞바다의 상천도에서 입국 허가를 기다리던 중 사망하여 아쉽게도 뜻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그의 선구적인 선교 사업은 많은 결실을 가져왔다.
이때 일본에서는 선교에 도움을 주는 성화를 제작하는 학교와 인쇄소까지 갖춰지는 등, 열정적으로 선교가 이뤄졌다. 당시 서양에서 이미 만들어진 동판화들이 선교를 위한 목적으로 일본에 들어오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오른쪽 작품 같은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지구본을 들고 우주의 지배자로서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의 마르텐 드 보스가 원화를 그리고 비에릭스 형제가 판각을 맡았다. 이런 식으로 제작된 동판화로 유명한 것이 <예수님의 일생>을 그린 153장의 작품집이다.
서양의 동판화나 유화가 모두 귀하여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곧 모방작들이 등장했다. 왼쪽 작품은 일본인 야곱 니와Jacob Niwa 1579~?가 그린 것으로 유화의 분위기를 일본화 기법으로 표현했으며, 오른쪽 동판화가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 제작된 대표적인 초기 서양풍 그림 중 하나인데, 야곱 니와는 후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인들에게 서양화를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야곱 니와의 그림은 오른쪽 동판화와 비슷하긴 하지만, 얼굴로만 이루어진 아기 천사들을 모두 없애고 대신 구름으로 처리했다. 예수님의 얼굴과 옷도 약간씩 바꾸어 훨씬 더 다듬어진 모습으로 처리했다. 옷의 주름을 많이 없애 다소 평면적으로 바꾸었고, 지구본도 약간 변형시켰다.
일본에서 이러한 성화 제작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많은 성화가 만들어졌고, 이것들은 다시 중국에 보내져 마침내 유명한 선교사 마테오리치가 중국의 판화책 <정씨묵원程氏墨苑>을 통해 서양 판화들을 소개할 때 포함되었다. 이때까지는 일본의 선교와 성화 제작이 중국을 앞서가고 있었으나 1587년의 선교사 추방령, 1622년의 나가사키 대박해와 이어지는 1635년부터 1854년까지의 극심한 박해는 일본에서 기독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비록 1세기 정도밖에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독교 미술품을 많이 제작하진 않았으나, 서양 문화가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들어오는 발판을 마련했다. 성화는 아니지만 동아시아에서 수많은 서양풍 그림을 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야곱 니와의 그림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기독교미술이 시작되는 상징적인 작품이며, 축복하는 의미를 지닌 예수님의 손가락은 수많은 신을 섬기는 일본 땅에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소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 주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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