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초기의 기독교미술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이 물음의 답은 로마의 카타콤 벽화에서 찾아볼 수가 있을 것이다. 좁은 지하의 생활공간에 예수님을 주제로 목자이신 예수님이 양을 메고 있는 모습이나 구약의 요나와 연관된 이야기 등이 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구약의 여러 주제들은 로마에서 멀리 떨어진 소아시아 지역의 유프라테스 강 상류, 지금의 시리아에 있는 고대 도시 듀라 유로포스Dura Europos의 예배당 벽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유적들은 1921년에 영국군 장교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세례당이 있는 가정교회와 규모가 큰 유대교 회당synagogue 등이 발굴되었다. 세례당과 유대교 회당에는 벽화가 많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의 벽화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역은 지금의 팔미라와 마리 근처에 있는 무역 도시로, 3세기경에는 로마의 변경邊境 군사요지였다가 256년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벽화는 유대교 회당의 서벽에 그려진 벽화들 중 일부분으로 전체는 모두 58장면에 이를 만큼 많다. 왼쪽 끝에서부터 모세가 지팡이로 물을 내어 각 지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 그 옆으로 제사장 아론과 성막, 성막 기구들, 그리고 이사야가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에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엘리야, 에스더와 모르드개, 아하수에로 왕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이 화면의 오른쪽으로는 떨기나무 옆의 모세와 출애굽 장면 등이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 화면은 모세가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내었다는 부분민 20:6~13을 확대한 것이다. 물줄기가 열두 지파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마치 호스에 관이 연결되어 흘러 들어가듯 표현되어 흥미롭다.
이 지역에는 유프라테스 강의 물을 끌어들이는 데 사용했던 구멍 뚫은 돌을 이어 만든 긴 수로관이 발견되는데 바로 이것을 묘사한 듯하다.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하며 표현하는 것이 그들의 생활환경을 토대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열두 지파를 한 사람씩 장막 안에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 또한 고풍스러우면서도 정겹다.
무엇보다 벽화의 그림들은 아직 평면적이고 인물들 간의 비례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초기 기독교미술의 고졸하고 순박한 면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카타콤의 벽화들보다 더 잘 구성되어 있고 설명도 구체적이며 새로운 주제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단계에 이르러 비로소 초기 기독교미술이 그 틀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벽화들에는 하나님이 직접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셨던 이야기들이 파노라마처럼 생생하게 전개되고 있다. 능력의 하나님과 그 섬세한 인도하심이 아름다운 채색과 함께 잘 드러나는 가운데, 3세기 기독교인들이 믿었던 구약의 여러 사건과 인물들이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