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동아시아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시기가 당나라 때라는 것은 서안에서 발견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를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의 기독교미술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2006년 5월에 낙양에서 829년에 제작된 기독교 주제의 경당經幢, 독특한 형태의 중국 비석이 발견되어 이 의문을 다소 풀 수 있게 되었다.
그림에서 보다시피 이 경당은 8각형으로 되어 있고, 위에는 부조로 된 십자가와 그림이 있으며, 그 아래에는 경교의 경전이 새겨져 있다. 경교는 5세기에 활동했던 네스토리우스의 신학 사상을 따르는 네스토리우스파를 일컫는 것으로, 마리아에게 신성이 없다고 하여 이단으로 몰려 동방으로 쫓겨 간 기독교의 일파이다. 여기에 새겨진 경전은 <대진경교선원지본경大秦景敎宣元至本經>으로 한문으로 적혀 있다.
네스토리우스파는 페르시아 지역에서 성장했고, 소그드와 서역을 거쳐 635년에 중국에 들어와서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해 서안과 낙양 등지에 교회를 건립했는데, 이 교회를 대진사大秦寺라 부른다. 대진은 로마를 말하는 것으로, 서양에서 왔다는 의미이다. 이 종교는 특히 소그드인들이 신봉했는데, 이 경당도 낙양에 거주했던 소그드인들이 건립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부분은 상단의 그림들인데 십자가와 천사들이 두 번씩 그려져 있다. 십자가 주위를 천사들이 호위하고 있는데, 천사들이 마치 불교의 비천상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십자가도 중국인들이 많이 보던 구름 문양과 함께 표현했으며, 천사를 비천의 모습으로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경교는 당시 세력이 컸던 불교의 이미지나 용어를 사용해 교리 내용을 전달했다. 예를 들면 여호와를 아라가阿羅訶, 메시아를 미시가彌施訶로 부르며 ‘인연’과 같은 불교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는 중국에서 외래 종교를 수용할 때 현지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에게 친숙한 용어나 이미지로 바꾸어 소개했음을 보여 준다.
발해나 경주 등지에서도 경교의 미술이 발견되는데, 마리아가 예수님을 안고 있는 것이 마치 보살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같으며, 불교의 삼존불 형태를 하고 있는 것도 있다. 숭실대의 기독교 박물관에는 발해의 기독교미술이 전시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질적인 두 문화가 결합하는 것을 습합習合 현상이라 부른다.
네스토리우스파는 몽고족이 세운 원대까지 지속되다가 이후 소멸했고, 명 말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기독교가 새롭게 전파되기 시작한다. 이 경당에 보이는 미술은 예수회로 인해 서양 미술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 주는 매우 귀중한 예이다. 이와 같이 복음 전파의 방법은 시대나 그 지역의 문화와 동떨어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고 목수의 일을 하시며 우리를 대신해 우리의 모든 죄와 질고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화목제물 되신 그 사랑의 이유가 더욱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