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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성 십자가의 전설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경으로 나오는 이태리 피렌체 근처에 있는 도시인 아레초에는 성 프란체스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의 성가대 예배당에는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1415~1492의 <성 십자가의 전설>이라는 프레스코화가 정면에 그려져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이태리의 성 세폴크로에서 태어나 피렌체의 도메니코 베네치아노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주위의 도시들에서 작업을 했다. 그는 뛰어난 미술이론가였으며 수학자였고 원근법에 관심이 많아 『회화에서의 원근법』과 같은 저술도 남긴 바 있다. 그는 그림에서도 자신의 이론을 구현하듯 인물과 사물을 균형감 있게 처리하며 공간감과 괴량감 그리고 원근법을 합리적으로 구사한다.
<성 십자가의 전설>은 중세에 보라기네의 야코부스 대주교가 쓴 『황금전설』의 <거룩한 십자가의 발견>이라는 항목에 들어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예수님이 달리셨던 십자가의 나무는 원래 아담이 아들 셋에게 낙원에 가서 구해 오게 했던 나뭇가지가 아담의 무덤 위에 심겨서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후에 이 나무는 다리를 짓는 나무가 되었는데, 솔로몬 왕을 방문하러 오던 시바의 여왕이 다리를 건너다 알아보고 정중히 절을 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그 후 이 나무는 예수님이 달리시는 십자가로 사용되었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였던 헬레나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죽은 사람을 이 나무에 가까이 놓았더니 그가 살아났다는 기적도 전해진다. 분실되었던 이 나무를 헤라클리우스 장군이 전투를 해서 다시 찾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다소 황당한 내용도 있지만, 피에로가 작품화하면서 르네상스 시기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전해지게 되었다.
여기서는 아담이 죽는 장면과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만나러 오는 장면만 보고자 한다. 아담이 죽는 장면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 오른쪽에 늙은 아담이 누워 있고 그 중간에 셋이 천사를 만나는 모습이 작게 그려져 있으며, 왼쪽에 아담이 죽은 채 누워 있다. 그 중간에 큰 나무가 서 있는데, 이것이 후에 십자가로 쓰일 나무인 것이다. 전체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고, 인물들이 안정적인 자세와 양감을 보인다.
그 아래 왼쪽은 시바의 여왕이 나무다리에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하는 장면이고, 오른쪽은 솔로몬 왕을 만나 이 이야기를 전해 주는 장면이다. 우아하게 묘사된 시바의 여왕과 궁정에서 솔로몬 왕이 만나는 모습이 격조 있고 품격 있게 보인다. 피에로는 마치 그리스의 조각과 같이 인물을 표현하는데, 선명하지 않은 윤곽선이 안개에 싸인 인물처럼 신비화한다.
비록 이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피에로에 의해 멋진 예술품으로 거듭났으며, 중세인들의 십자가에 대한 사랑이 이런 신비함으로까지 이끌었다고 생각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 십자가가 전설을 넘어 매일 삶 가운데 체험되어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