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화가들이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즐겨 그리는 주제 중 하나가 이집트로의 피신이다. 아기 예수는 태어나자마자 헤롯 왕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게 되는데, 이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마 2:13고 한 천사의 지시를 따른 것이다. 이는 또한 선지자 호세아를 통해 말씀하신 바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다”호 11:1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집트의 카이로에는 예수님의 가족이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곳에 예수피난 교회가 서 있다.
이집트로의 피신이라는 그림 주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표현된다. 하나는 아래그림과 같이 대낮에 앞에서 요셉이 나귀를 끌고 뒤에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나귀를 타고 가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어두운 밤에 몰래 불을 피워 놓고 긴 여정 중에 휴식을 취하는 장면 또는 오른쪽 그림과 같이 밤길을 가는 장면이다.
아래는 이탈리아의 베니스의 화가인 비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1525의 작품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로 역사화나 종교화를 많이 그렸는데, 주로 강렬한 색채를 사용했고, 섬세한 세부 묘사를 잘했다. 그는 특히 옷에 붉은색을 잘 사용했는데, 베니스의 어떤 음식점 주인이 붉은 육회를 이용한 음식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전해져 ‘카르파초’가 음식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여기 소개하는 그림에서도 요셉과 마리아는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붉은색 옷을 입고 있는데, 특히 마리아가 매우 정교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무늬의 겉옷을 입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실제는 이렇게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나, 그들이 특별히 존귀한 사람들이라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주위는 무척이나 조용하고 맑고 평화로운 분위기로 묘사되어 있는데, 뒤를 돌아보며 큰 걸음으로 나귀를 끄는 요셉의 모습이 역동감을 더해 주고 있다. 비록 급히 피신하는 상황이지만 천사의 인도를 따라가는 평안함이 느껴진다.
한편 기독교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리는 조광호 교수의 작품은 별이 총총한 밤길을 가는 성가족聖家族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림의 아랫부분은 전통적인 표현 방식을 따르고 있으나 하늘 위에는 수많은 별이 쏟아지듯 부어지고 있으며, 길게 표현된 초승달과 기하학적인 형태의 거꾸로 선 세모와 날카로운 형태가 특이하다. 톱날과 같이 생긴 이 모습은 두려움을 조형화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비록 두려운 밤이지만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며 걷는 요셉의 시선, 밤하늘의 수없이 많은 금빛으로 표현된 총총한 별들의 반짝임은 외로운 요셉에게 마치 하나님의 다정한 위로처럼 서정적인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다.
이 두 작품은 고통스럽고 외로웠을 이집트로의 피난길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여건과 상황이 어렵더라도 주님과 함께하는 길은 이 그림에서와 같이 평안하고 여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 여정도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라는 찬송처럼 주님만을 바라볼 때 그분이 주시는 평안함으로 묵묵히 침착하게 걸어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