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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2월

시공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랑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인류의 역사라는 것도 하나님의 시간에서 보면 찰나에 불과하겠지만 우리 인간에게는 의미 있는 긴 시간이며, 작가들은 이것을 표현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이러한 과거의 시간을 표현하고자 했던 서양의 작가들은 신화적인 주제를 다루거나 그리스나 로마의 이야기 또는 유적지를 배경으로 그려 넣었다.
18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화가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Giovanni Paolo Pannini, 1691~1765는 특히 고대의 부활을 희구했기에 로마의 유적지를 배경으로 그리거나 고대 건물의 내부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으며, 로마 시대의 여러 건축물을 조합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에게 로마는 영화롭고 이상적인 시간을 의미하며 역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여기에 소개하는 <바울의 설교>는 서아시아의 여러 곳을 돌며 전도하는 바울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무너진 옛 신전의 돌무더기 위에 아직 남아 있는 기둥과 화려함의 흔적들을 배경으로 바울이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판니니는 그림의 중앙에 바울을 배치하고 측면에 건물을 두었는데, 그에게 있어서 건축물은 부수적인 소재가 아니라 가장 멋있었던 과거와 역사를 상징하는 의미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인 바울의 전도여행 시절을 묘사함과 동시에, 화려했던 로마의 영화와 몰락이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보여 준다.
이와 관련된 시도를 보여 주는 작품으로는 우리나라 화가 김미옥의 <바티칸 궁전/ 갠지스 강>을 꼽을 수 있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 광장에 물이 가득 출렁이고 그 한가운데에서 인도인들이 세례를 받는 장면인데, 마치 그들이 신성시 여기는 갠지스 강에서 의식을 치르는 듯이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성베드로 성당과 갠지스 강을 연합시킴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표현한 듯하다. 하나님의 사랑은 바티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땅 끝이라고 여겨졌던 인도와 아마존에도 편만하며, 현재뿐 아니라 과거 로마 시대나 르네상스 시대, 아니 태초부터 있었음을…. 또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온 인류에게도 향하고 있음을….
김미옥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차용借用이라는 기법을 구사하는데 주로 소아시아의 옛  성터나 터키의 기독교 유적지, 그리고 여기에서 보듯이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과 같은 건축물을 기반으로 한다. 또 그 안에 전혀 다른 지역이나 문화권에서 볼 수 있는 풍속적이고 일상적인 요소들을 결합함으로써 지역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했다.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은 가는 실타래와 같은 선들로 이어지면서 일체감을 공유한다.
이제 우리는 지구촌의 인류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 아래에서 하나 되는 시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대의 도래를 꿈꾸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들을 전하며 역사의 한 순간, 한 지점을 소중히 이어 갔으면 한다.

- jungheehans@hanmail.net


왼쪽 그림: 조반니 파올로 판니니, <바울의 설교>, 1744, 에르미타주 미술관
오른쪽 그림: 김미옥, <바티칸 궁전/ 갠지스 강>, 2010, 작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