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프랑스의 랭스라는 도시에 가면 후지타 채플이라고 불리는 성당이 있다. 외관은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1966년에 완공된 것으로 현대판 시스틴 성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성당의 내부는 벽화로 둘러져 있는데, 이 벽화를 그린 작가는 놀랍게도 일본인 후지타 쓰구하루(藤田嗣治, 1886~1968)이다.
파리에서 계속 활동한 후지타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화가로서 ‘에콜 드 파리’의 일원이며 피카소나 샤갈에 버금가는 작가이다. 그는 프랑스의 한 성당에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73세에 랭스 성당에서 세례를 받게 된다. 한편 그의 대부(代父)였던 프랑스의 샴페인회사 회장인 르네 라르가 평생의 소원으로 한 성당을 건립하고자 하였는데, 그로부터 내부의 벽화 그리기를 부탁받게 된다.
후지타가 이 작업에 착수했을 때는 이미 79세로, 벅찬 중노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미켈란젤로와 같이 프레스코 기법으로 벽화를 그리기로 하였다. 이는 재빠르고 정확하게 묘사하지 않으면 석회가 금방 굳어버리는 단점이 있는 고식(古式)의 기법이었다. 그러나 시스틴 성당과 같은 걸작을 남기고 싶었던 후지타는 작업을 시작하였고, 3개월 만에 완성하였다. 하지만 이 무리한 강행군으로 결국 병을 얻어 1년 후에 세상을 떠난다.
이 성당에는 후지타가 평소 생각해 왔던 성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제작되었다. 그는 유화를 그리면서도 동양의 기법인 윤곽선을 사용하고 있으며, 강한 채색을 쓰지 않고 유백색을 사용하여 수묵화의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뛰어난 묘사력과 인물표현을 바탕으로 배경과 의상에 청색을 많이 써서 청결하고 고상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실내의 정면에는 성모자상이 있으며, 그 위 하늘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을 안고 있는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다. 그 오른쪽으로는 발을 씻기시는 예수님, 그리스도의 탄생,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으며, 왼쪽으로는 수태고지, 십자가에서 내리심, 그리스도의 세례와 같은 주제들의 그림이 있다. 그리고 입구 위에는 넓은 화면에 그리스도의 책형이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이 실내의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다.
후지타는 원래 사실적인 표현에 뛰어나고 인체 묘사에 발군의 기량을 갖고 있어 이 모든 능력이 벽화들에 부어지고 있다. 현대의 새로운 실험적인 화법을 구사하지 않고, 고전적인 화풍으로 옷을 두텁게 걸친 모습을 표현하여 누드 위주의 미켈란젤로의 벽화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79세의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든 작업에 뛰어든 후지타의 용기는 자신에게 부여된 재능을 모두 쏟아 부어 하나님께 돌려드리려는 의지로써, 그가 느끼는 은혜의 깊이를 짐작케 한다. 물론 끼니를 자주 거르는 힘든 시간도 보냈지만 마침내 일본 최고의 화가로 성장하여 영광과 부귀를 누린 것에 대해 그에게는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의 감사가 있었을 것이다. 늘 부족한 우리의 헌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께 돌린 후지타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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