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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유라굴로 광풍을 넘어서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사도행전 27~28장에는 로마로 압송되어 가는 바울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가이사랴에서부터 로마까지 약 2,200km를 항해해서 가던중 그리스의 그레데 해역에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된다. 이것은 유라굴로(Euroclydon)라는 것으로, 지중해에 부는 사나운 바람이다. 특히 가을과 겨울에 심하게 부는데, 바울은 이때를 피해 가고자 했으나 백부장이 바울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 출항했다가 결국 큰 풍랑을 만나게 된다. 바울의 로마를 향한 마지막 전도여행 중 유라굴로를 만나 표류하는 내용은 설교와 그림의 주제로도 많이 채택되고 있다.
  왼쪽의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인 루돌프 바크휘센(Rudolf Backhuysen, 1631~1708)의 <바울의 파선>(Paul? Shipwreck)이라는 작품으로, 폭풍우로부터 간신히 섬에 도착한 바울 일행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크휘센은 네덜란드의 엠덴 출신으로, 후에 암스테르담에 가서 활동하였다. 그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로크 회화를 대표하는 화가로서 주로 자연의 풍경을 그리는데, 특히 난파선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다.
  “날이 새매 어느 땅인지 알지 못하나 경사진 해안으로 된 항만이 눈에 띄거늘…백부장이 바울을 구원하려 하여…헤엄칠 줄 아는 사람들을 명하여 물에 뛰어내려 먼저 육지에 나가게 하고 그 남은 사람들은 널조각 혹은 배 물건에 의지하여 나가게 하니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조되니라”(행 27:39~44). 바크휘센은 바로 이 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였는데, 심하게 기울어진 배와 그 뒤로 보이는 어두운 먹구름과 거친 파도, 전경의 힘겹게 섬에 도착한 사람들이 긴박했던 당시의 상황을 잘 살리고 있다.
  오른쪽은 바울이 표류하며 지났던 그레데섬의 남쪽에 있는 가우다(Cauda) 섬의 모습이다. 사진은 멀리 파란 바다가 아름답게 보이고, 앞에는 작은 교회가 그림과 같이 자리하고 있는 평화스러운 장면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과도 같아 보인다. 망망대해와 언제 닥칠지 모르는 폭풍우와 홀로 맞서 서 있는 작고 외로운 교회처럼….
  유라굴로 광풍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오랜 바다의 경험을 자랑하는 선장과 막강한 재력을 가진 선주, 그리고 이들과 다수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백부장과 같이 우리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의지하며 나의 이익을 위해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 결과 인생의 폭풍을 만나면 우리는 절망하며 그 가운데서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다. 폭풍 속 난파선의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을 담대히 전하며, 사명감으로, 탁월한 지도력으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처럼 승선한 276명 모두를 먹이며,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행 27:34)고 희망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는 더욱 거센 유라굴로 광풍이 불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뿐 아니라 핵문제, 종교와 이념간의 갈등, 독재에 항거하는 자유화 물결, 경제위기 등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들조차 경건의 능력과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멜리데 섬까지 이끄시고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바울처럼 이 시련을 헤쳐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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