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우리가 즐겁게 살고 있을 때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에 다다랐을 때에는 죽음과 직면하게 된다.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맞이해야 하는 죽음이지만 이를 반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 죽음을 만나게 되면 부인하거나 원망, 분노하는 마음으로 맞이하지만, 시간의 도움으로 서서히 수용하게 된다. 작가들 중에도 이와 같이 죽음을 대면하면서 그것을 작품에 드러내는 경우가 있는데, 그림에 해골을 그려 넣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동서양의 두 작가가 각기 다른 상황 속에서 이러한 죽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결국은 모두 죽음을 받아들이고 평안한 마음으로 주님의 품에 안기었다. 왼쪽은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활동하였던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의 작품이고, 오른쪽은 20세기에 활동하였던 일본의 나카무라 츠네(中村彛, 1887~1924)의 작품이다. 시대도 다르고 지역도 크게 다르나 해골을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은 유사하다.
우선 라 투르의 작품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가 촛불 아래에서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이다.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리아는 이전의 방탕한 삶을 회개하고 죽음을 묵상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앞쪽의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며 비장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 밝게 타고 있는 촛불은 얼마 남지 않은 생을 상징한다. 어둠 속에서 밝게 드러나는 명암의 대비는 바로크 화가들이 즐겨하는 표현이며, 빛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라 투르는 생전에 부유하게 살았는데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지 않아 비난도 많이 받았다. 주위의 사람들과 분쟁이 많았고, 농민들에게 폭행을 가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참다못해 분노한 농민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 같은 사실이 작품과는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지만, 라 투르가 이런 생활 속에서 인생의 종말을 예견하고, 자신의 잘못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회개하는 심정으로 그린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일본의 나카무라는 아주 어릴 적에 고아가 되어 형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왔다. 거기다 체질적으로 약골이라 병을 달고 살았다. 후에 미술을 배워 작가로서 등단하게 되지만 후견인이었던 두 형들마저 전쟁으로 전사하고, 좋아하던 여성과는 그 부모의 반대로 결혼에 이르지 못하자 심하게 방황하기도 하였다. 기독교인이었던 친구의 도움으로 신앙을 갖게 되어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었지만 병약한 체질로 인해 37세에 단명하고 만다.
해골을 들고 있는 자화상은 죽음을 대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지만, 본인의 저서를 통해 자신은 신앙으로 마음이 평안하였고, 몸은 약하나 영성은 강하였다고 서술하고 있다. 병으로 지쳐 해쓱한 얼굴이 작품에서도 드러나는데, 여기서의 해골은 비극을 상징한다기보다는 죽음을 대면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에 찬 작가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그림을 그린 두 작가는 모두 인생이 평탄하지 못하였다. 특히 나카무라는 너무도 힘든 여건에서 짧은 생을 보내 안타깝기 그지없는 인물이다. 죽음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을 통해 죽음을 묵상해보며, 인간의 죄의 대가인 어두운 죽음 너머에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부활의 주님이 계심을 기억하고 그분을 더욱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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