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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8월

살바도르 달리의 Crucifixion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시계가 나뭇가지에 걸쳐 길게 늘어져 있는 초현실주의 그림으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그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호안 미로(Joan Miro)와 함께 스페인이 배출한 세계 미술계의 거장이다. 기발한 착상과 기이한 행동으로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살바도르 달리는 기독교를 주제로 한 그림을 몇 점 남겼다. 물론 신앙심에서 우러난 작품은 아니지만 서구인들에게는 오랜 전통 속에서 친숙한 이 주제를 달리는 새롭게 표현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그리스도의 책형(?刑)이라 하고 이것을 영어로는 Crucifixion이라 하는데, 이 주제는 오랜 기간 많은 화가들에 의해 다뤄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그런데 창의력 넘치는 달리가 새롭게 표현한 것이 바로 오른쪽 그림이다. 예수님이 달리신 십자가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식으로 그려지던 종래의 방식과 다르게, 이 그림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에서 그려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통에 일그러진 모습이 아니라 근육질의 남성미 넘치는 건장한 모습이다.
달리가 스페인 아빌라의 갈멜수도원에 있는 성 요한(1542~1592)의 작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도판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서 발전하여 달리의 작품이 되었는데, 그림 아래에는 스페인의 한 항구와 옛 그림들에서 따온 배와 어부들이 그려져 있고 골고다의 언덕 대신 일상의 현장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치 갈릴리 호수에서 만났던 어부 베드로 형제를 기억하고 계시는 듯이.
그리고 위엄 있고 기운찬 그리스도의 상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통치자의 권위와 세상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점이 기존의 고통스런 십자가상과는 크게 배치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색다른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달리는 위의 그림처럼 이 주제의 다른 그림에서 역시 파격적인 도상을 선보이고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받는 힘든 모습이 아닌 깨끗하고 매끈한 몸매에 큐빅 형태의 기하학적 모양의 십자가 모양의 틀에 매달려 있다. 그 아래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 대신에 자신의 아내 갈라(Gala)를 배치하였다. 갈라는 노란 옷을 어깨에 걸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노란 색은 주로 배반을 상징하는 것으로 달리는 가룟 유다를 표현할 때 이 색을 사용했다. 아마도 유다의 배신을 상징하기 위해 노란 옷을 걸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전의 십자가 아래에서 울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과 고통받는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 승리자로서의 이미지와 담담하게 우러르는 여성의 모습은 역시 통상적인 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이 두 그림에서와 같이 달리는 상식화되어 있는 주제에 새로운 감각과 해석을 가미하여 유례가 없는 조형미를 이루어냈다. 이 그림들이 준 충격은 매우 컸으며, 관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과 함께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예술가의 남다른 감각은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익숙한 주제를 다시금 새로운 시각으로 되돌아보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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