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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9월

순교자들의 행진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많은 신자들이 역사 속에서 박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순교의 길에 들어섰는데, 이단과 싸워 순교하였던 이들을 포함하여 여러 순교자들이 일렬로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이탈리아의 베니스 남쪽 아드리아 해변에 있는 라벤나라는 도시인데, 그곳에 산 아폴리나레 누오보라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504년경에 고트 족의 테오도릭 왕의 궁궐에 속한 교회로 건축되었는데 이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성 마틴에게 봉헌되었다가 9세기에 이르러 클라세에 있는 아폴리나레의 성골(聖骨)을 해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이 성당으로 옮겨오면서, ‘새로운’이라는 뜻의 누오보라는 이름을 더 갖게 되었다.
이곳의 벽화는 한 번에 다 조성된 것은 아니고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테오도릭 왕 당시의 아리우스파적인 성격의 벽화가 후에 아타나시우스파적인 성격으로 변모한 사실이며, 여러 차례 수리와 교체 작업을 거쳐 9세기경에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고 있다. 긴 회랑을 따라 좌우 벽면에 벽화가 모자이크로 그려져 있는데, 북쪽 벽면에는 22명의 여성들이 각기 면류관을 들고 동방박사들의 뒤를 따라 천사들과 함께 있는 성모자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종려나무를 배경으로 순교자들이 모두 유사한 복장과 자세를 하고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데, 인물을 각기 다르게 그리는 후대의 방식과는 많이 다르지만 이러한 고풍스런 표현이 오히려 종교적 동질감과 경건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맨 앞에 앞장선 동방박사 세 명의 모습은 비잔틴의 동방 복장이나 얼굴 모습에서 보이듯 후대에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뒤따르는 순교자의 행렬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춤을 추듯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별의 인도를 받으며 나아가는 이들은 각기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을 들고 가고 있는데 제일 앞에 흰 수염의 박사, 가운데에는 수염이 없는 박사, 그리고 맨 뒤에 검은 수염의 박사를 그린 점도 특이하다. 요즘 여성들이 많이 입는 무늬 있는 레깅스에 멋진 망토를 걸친 박사들이 꽃들을 밟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 같아 보인다.
남쪽 벽에는 흰옷 입은 남성 순교자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데, 모두 26명으로 보라색 옷을 입은 맨 앞의 순교자 성 마틴을 뒤따르고 있다. 천사들과 함께 보좌에 앉아 있는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장면인데 예수님은 위엄 있게 우주의 지배자로서의 이미지를 보여 주고 있다. 간소한 튜닉과 토가를 입은 같은 모습의 남성들 역시 여성들과 같은 면류관을 손에 들고 있다. 두 행렬에서 보듯 순교자들이 들고 있는 면류관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환란을 견딘 서머나교회에 주신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떠오르게 한다(계 2:10). 
이 벽화들은 천국에서 상급이 가장 클 수 있는 순교의 길로 나아갔던 이들을 기리며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장렬한 모습을 모자이크로 표현한, 중세인들의 신앙심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점점 참된 신앙에서 멀어져 가고, 너무나 깊고 넓고 높고 크신 하나님을 보잘것없이 작고 작은 인간의 얄팍한 잣대로 이해하고, 진리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위해 성경을 해석하는 수많은 이단이 창궐하는 요즈음 이런 벽화를 통해 진리를 위해 순교에까지 이른 그들의 순수한 열정과 헌신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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