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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소금 광산 깊은 곳에서 경배를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폴란드의 옛 도읍 크라카우(Krakow, 크라코프)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에 유명한 비엘리츠카 소금 광산이 있다. 이곳은 원래 바다였는데 약 200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암염층이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길이는 무려 10km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무렵에 소금을 채굴하는 광산이 되었고, 갱도 곳곳에 2천여 개의 방이 만들어져 있으며, 현재 일부 지역이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다.
독특하게도 이 소금 광산은 미술과 관련이 있는데, 그 안에 많은 조각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갱도를 따라가며 곳곳에 방이나 공간이 만들어져 있고, 그곳에 다양한 조각들이 장식되어 있다. 그중에 이 광산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헝가리에서 시집온 전설의 킹가 공주상도 자리하고 있다.
특히 지하 100m에는 아래의 그림과 같이 예배당이 만들어져 있는데, 이 예배당은 1896년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소금 광산 안을 이렇게 파내서 큰 규모의 예배당을 만들었다는 것은 지극한 신앙심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곳의 조각은 모두 이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새긴 것이다. 그들은 예술적 감각이 매우 뛰어났던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조각품은 누가 새겼는지 모르는 것들이나, 다행히 이 예배당의 조각들만큼은 그 제작자가 알려져 있다. 조제프와 토마스 마르코우스키 형제와 안토니 비로데크(Antoni Wyrodek)가 그들로, 광부 조각가들 가운데서도 솜씨가 훌륭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토니 비로테크는 이 예배당의 조각을 제대로 완성시키기 위해 크라카우의 미술대학에 들어가서 정식으로 조각을 공부하고 돌아와 적극 참여했다고 한다.
예배당 주변 벽에는 많은 부조들이 새겨져 있는데, 위에 보이는 <이집트로의 피신>을 비롯하여 <헤롯왕의 영아 살해>, <가나의 혼인잔치>,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달리심> 등 여러 장면들이 있다. 그중에서 이 <이집트로의 피신>과 <가나의 혼인잔치>는 모두 안토니 비로데크에 의한 1920년대의 작품들로 정교함이 뛰어나다.
깊이를 드러내는 오행감(奧行感)의 표현이나 인물들 주변의 야자수, 그리고 건물들의 표현이 가운데의 주요 인물들과 적절히 어울리고 있다. 그러나 <최후의 만찬>은 이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동일 이름의 그림에서 주변 장식문이나 실내를 표현 하는 데 약간의 차이를 보일 뿐이다.
이렇게 많은 조각들이 모두 소금을 다듬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잘 마모되지 않는 이유는 이곳의 소금이 거의 수정과 같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기에 불을 밝히고 있는 샹들리에의 크리스털 장식까지도 모두 소금으로 된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예배당에서는 하루에 한 번 관람객을 위해 바흐의 성가에 맞춰 조명을 껐다 켰다 하는 퍼포먼스를 하는데 마침 필자가 갔을 때 그 장면을 연출해 특별한 감흥을 받았다. 소금으로 둘러싸인 지하 깊은 곳에서 격조 높은 찬양이 울려 퍼지는 것도 장엄한 아름다움이었지만, 그보다 이곳에 더 나은 조각을 만들기 위해 광부생활을 잠시 접고 미술대학에 들어가 제대로 배운 후 더 나은 작품을 만들었던 광부 조각가의 신앙심과 열정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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