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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1월

월전 장우성의 한국적 성화

과월호 보기 한정희 교수·홍익대 미술대학

20세기에 들어와서는 한국의 화가들도 성화를 그릴 때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그리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김기창이나 김학수 같은 화백들이 예수님의 생애를 한국적으로 변모시켜 그렸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나 그 이전에 이미 월전 장우성이나 장발과 같은 서울대 교수들이 한국적인 성화를 그렸던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해방 직후에 서울대가 세워지면서 미대학장을 맡은 인물이 장발이었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기도 해 성화를 많이 그리고 있었다. 1949년에 바티칸성당에서 ‘세계의 성미술전’을 개최하면서 각국 교단에 자국의 성화를 그려 보내달라고 의뢰했을 때 장발 학장과 당시 젊은 교수인 월전이 한국 대표로 출품하게 되었다.
월전 장우성은 원래 세필화로 유명한 이당 김은호의 제자였기에 화풍이 정교하고 섬세했으나 서울대 교수가 된 후로는 같은 학교에 있던 동양화가 김용준과 의기투합해 전통적인 문인화가 한국적인 화풍이 될 수 있다고 보아 문인화풍을 동양화의 기본화풍으로 삼았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은 모두 신 문인화풍으로 그려진 것으로 필선이 정교하지 않고 소략하고 담백하며 먹선이 진하지 않고 연하게 처리되어 있다.
신 문인화풍으로 그려진 오른쪽의 성화는 기품과 절제가 숨어 있는 새로운 분위기로 복식도 모두 한국식으로 변모했다. 마리아가 한 팔로 예수님을 안고 또 한 손으로 아이인 세례 요한의 손을 잡고 있는 것으로, 당시 바티칸 전시회에 출품해 지금도 그곳에 소장되어 있다.
원래 세트로 된 3점의 작품 중 가운데 것인데, 좌우에는 한국 땅에서 박해로 인해 순교를 당했던 신자들을 그렸다. 마리아가 한국 여성의 모습으로 한복을 입고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미술의 토착화 단계다.
역시 같은 해에 제작된 <한국의 성모자상>은 경복궁을 배경으로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마치 왕비처럼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아마도 새해를 축하하는 뜻에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데, 마리아의 품에 안겨 색동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아기 예수의 모습이 그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역시 밝은 색채에 의한 북악산과 청동향로 그리고 전각들 배경은 한국화 된 성화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한복을 입은 마리아의 차분하고 품위 있는 모습과 주변의 아름다운 색 대비가 새로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이 두 작품을 그리고 난 36년 후에 월전은 예수님의 단독 초상을 그렸는데, 빨간 옷을 걸치고 손을 아래와 위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동양의 불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복식이 서구식이 아니라 인도식에 가까운 것이다. 온 땅의 통치자로서의 위상에 맞게 땅 위에 서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은 이전의 예수님 초상과 달리 동서양이 혼합된 이미지다.
월전은 꼼꼼하게 그리는 인물화에 뛰어나 한국 정부에서 추진했던 이순신, 권율과 같은 역사적인 인물을 그리는 표준영정 제작에도 많이 참여했다. 월전은 이후에 화훼화나 산수 등의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화가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러한 인물화를 통해 한국적 성화의 가능성을 연 것은 그의 큰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jungheehans@hanmail.net

장우성, 성모와 아기 예수, 1949년, 바티칸 교황청

장우성, 한국의 성모자상, 1949년, 개인 소장

장우성, 기독부활상, 1985년,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