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유미영 성도
<날마다 솟는 샘물>로 큐티를 하면서 제일 연단된 부분은 ‘나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매일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없어도, 적어도 ‘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싸움을 해야 하는지 ‘말씀’으로 깨닫게 됐다.
위기를 말씀으로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단번에 나오지 않는다. 끊임없는 훈련과 묵상으로 연단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아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단순히 큐티하는 행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말씀을 꾸준히 묵상하는 가운데 내 영혼이 세상 가운데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점검하고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흔적’을 나타내며 살고 있는지에 대해 거울 보듯 점검할 수 있는 것이 큐티의 가장 큰 유익이라 생각한다. 성령께서 근심하지 않도록 말씀이 조명하는 빛으로 신부의 모습을 단장하며, 말씀을 심비에 새길 힘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내 모습이 길가에 버려진 젖은 장작 같아서 불이 붙지 않을 때가 많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더욱더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적당히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벌거벗은 구원이라도 얻으려 세상과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했다.
젖은 장작도 오랜 시간 불 속에 있으면 탄다고 했던가. 큐티와 규칙적인 기도생활을 시작하면서 내면이 얼마나 썩어가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말씀 안에서 나와 같은 실수를 한 인물들이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다시 돌아왔는지 볼 때면, 나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기다림 앞에 회개하게 됐다. 또한 곪았던 내면의 상처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시는 성령님의 열심이 내 모든 가치관을 예수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추악한 나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나를 보내신 이의 뜻임을 깨달았다. 또한 진리가 죄인을 자유하게 함이 어떤 의미인지 알았고, 비로소 하늘나라의 썩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바라보게 됐다.
그렇게 그 본향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올려다볼 염치가 하나 없어도, 혈루증 앓던 여인처럼 겨우 옷자락 하나 잡고도 두려워 떨었던 그 마음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불러 주시기를 구한다. 악한 세상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도 성령에 불붙은 마음을 꺼트릴 자 하나 없음은, 살아 계신 말씀을 붙들고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동일하게 부어 주신 은혜일 것이다. 임마누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