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권나경 권사
습관은 삶의 중요한 중심축이다. 예수님을 모르던 시절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신문을 펼쳐 헤드라인을 훑고, 오늘의 운세를 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불나방이 제 살 타는 줄도 모르고 불을 쫓듯, 나는 영혼을 갉아먹는 세상의 습관을 따르며 살았다. 불혹의 나이에 주님을 영접하니, 이렇듯 헛되이 보낸 지난 시간이 너무도 안타깝다.
예수님을 만난 뒤로는 강이 바다의 품에 안기는 순간 이름을 포기하듯이, 매일 아침 예수님의 존전에 앉아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한날을 의탁하며 주시는 말씀을 마음에 받아 체질화하는 것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애벌레가 고치를 짓고 나방이 되는 과정처럼, 큐티가 체질이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거치고 순장과 교사로 섬김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큐티에 대한 책임감과 간절함이 더해졌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에는 묵상집 <날마다 솟는 샘물>이 있어, 섬세한 가이드를 따라 신구약의 말씀들을 현재의 삶에 적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묵상집은 날마다 일용할 영의 양식을 배달하는 맞춤형 보양 식단이다.
성령님께서는 말씀으로 각자의 삶을 정확하게 조명하시며 하루하루를 인도하신다. 지체들과 큐티를 나누다 보면 전혀 다른 환경과 상황임에도 적용 포인트가 비슷해 놀랄 때가 많은데, 이때마다 성령님의 일하심을 단체로 경험하는 은혜를 누린다.
고난주간에는 예수님과 바울을 자주 묵상한다. 사도행전 22장을 통해 사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된 순간을 묵상하다 보면, 살기 가득한 사울의 모습과 그리스도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예수님을 믿지 않던 예전의 내 모습이 겹친다.
내 삶에 빛을 주시며,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깊은 사랑에 감사를 드린다. 예수님의 구속사적 고난과 바울의 주님을 위한 고난을 묵상하면 내게 일어나는 ‘고난 언어’를 ‘영광 언어’로 대치하게 된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음을 믿기 때문이다.
말씀으로 무장하고 복음을 전했음에도 길가에 떨어진 듯 냉담한 반응이 돌아올 때면, 다메섹에서 바울을 만나신 예수님을 다시 묵상한다. 그러면 주님께서 나로 인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에 평안이 찾아온다. 큐티를 통해 말씀을 내 안에 가득히 담아, 빛 되신 예수님을 닮아 가며 거룩한 습관이 드러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