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염지선(신목고등학교 교사)
오래 전부터 준비된 사랑
- 염지선(신목고등학교 교사)
4년 전쯤 존경하는 한 선배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저는 하나님이 결혼을 창조하시고 귀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알겠는데요, 제가 왜 결혼을 꼭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주위에 결혼한 자매들을 보면 제약도 많고, 저는 그만큼 잘 해낼 자신도 없거든요. 그냥 독신으로 지내며 하나님만 위해서 자유롭게 사역하고 섬기면서 살면 안 될까요?”
그랬더니 그 선배는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지선아, 너는 우리가 사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니?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더 잘 알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결혼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가장 좋은 통로란다.”
그로부터 2년 후 나는 결혼을 했고, 과연 그 선배의 말대로 결혼이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작년 가을, 우리 가정에 새 생명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하나님의 또 하나의 성품을 경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오래 전부터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다.
매달 초음파로 아기의 성장을 확인하며, 고통스러운 입덧을 지나, 아기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태교일기에 쓰고, 어떻게 하면 좋은 엄마가 될까 육아서적도 읽고, 아기의 섭생을 위해 음식도 가려 먹고, 출산용품을 미리 준비해서 아기 방도 꾸며 놓고, 아기가 태어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가 비로소 해산의 고통을 통해 아기를 출산하는 그 과정.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꼭 닮았는지 모르겠다. 창세 전부터 나를 택하시고, 하나님을 알아 가는 통로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나의 죄를 씻기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감당하신 예수님을 이미 준비해 두신 하나님. 나는 겨우 10개월을 준비하면서도 쩔쩔매는데,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을 준비하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올 봄에 태어날 우리 아기는 과연 엄마의 이 준비와 노고를 언제나 알아주려나?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에게 태교일기를 보여 주었다간 읽기는커녕 다 뜯어먹어 버릴지도 몰라. 아마 탄생을 준비한 10개월보다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 배 속에 품고 다닐 때보다 더 고된 육아의 긴 터널을 지나 아이가 엄마의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사랑’을 알게 되기까지는. 내가 우리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내가 하나님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하루하루 철들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엄마의 마음을 알아 가라고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나의 오늘을 준비하셨나 보다. 봄이다. 새로운, 그러나 오래 전부터 준비된 시작. 초보 엄마가 될 올 봄은 막연한 설렘과 두려움이 아닌 하나님의 ‘준비된’ 사랑을 묵상하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