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여호와 이레’의 땅에 세워진 성전
예루살렘의 성전산은 현재 이스라엘과 아랍의 긴장 관계가 계속되는 분쟁 지역이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해 이삭을 드렸던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리라)의 땅, 곧 모리아산이기도 하다.
다윗은 인구 조사 때 각 사람에게 생명의 속전 반 세겔을 받지 않았다가 7만 명이 죽자, 아라우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릴 때 불이 떨어지는 응답을 받았다. 이후 그곳을 성전 터로 삼아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다(참조 대상 21:26).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70년을 보낸 유다 백성은 바사(페르시아) 왕 고레스로부터 칙령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두 번째 성전을 세웠다.
두 단계로 이뤄진 성전산
성전산은 크게 두 단계 높이로 돼 있다. 성전산의 첫 마당은 예수님 시대에 이방인의 뜰이라 불렸던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장사하던 이들을 쫓아내셨다.
두 번째 단계는 계단으로 6m 정도 올라가야 한다. 올라서면 만나는 넓은 뜰은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뜰을 연상시킨다. 중앙에는 성전 터의 유력한 후보지인 황금 돔이 있다. 북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보면 건축 양식이 조금 다른 바닥이 있어 시대에 따라서 성전 터를 넓혔음을 알 수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솔로몬 시대에서 스룹바벨, 헤롯 시대, 현대로 3천 년을 이동하게 한다.
동쪽에는 아치형 문과 계단이 있는데, 이 근처는 베드로가 나면서 걷지 못하는 자를 일으킨 미문이다. 이 아치 너머로 성전의 동문인 황금 문이 보이고, 그 너머 감람산에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눈물교회에서 겟세마네교회까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성전산을 두른 동서남북의 성벽
북쪽은 예루살렘에서 방어하기 가장 취약한 곳이다. 그래서 헤롯이 안토니아 요새를 만들었다. 안토니아 요새는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질당하신 곳인 동시에, 바울이 갇혀 있다가 주님의 환상을 본 곳이다.
서쪽 성벽은 일명 ‘통곡의 벽’으로 유명하다. 성전이 무너질 때 유일하게 서쪽 성벽만 남아서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통곡하며 성전을 기억했다. 서쪽 벽이 남은 이유는 이곳에 무게 543톤, 높이 30m나 되는 거대석이 성전의 기초석이 돼, 무너뜨리기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남쪽 성벽은 성경에서 ‘오벨’이라 불리는 곳으로 성벽에 두 개의 입구가 있다. 이것은 모두 ‘두더지’란 뜻의 ‘훌다’ 문이라고 한다. 순례객들은 이곳을 통해 성전에 들어간다.
동쪽 성벽은 성전산의 성벽이자 예루살렘의 성벽이기도 하다. 동쪽 성벽의 남쪽 방향 모서리 부분에는 스룹바벨 시대에 이어, 하스모니아 시대, 마지막으로 헤롯 시대의 성벽 확장 흔적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역사를 가진 예루살렘의 성전산은 기독교와 이슬람, 유대교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장소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장소에서 우리를 위한 생명의 속전을 치르시기 위해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성전 되게 하셨다. 이후 감람산으로 구름 타고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예수님을 마음에 그려 보니 가슴이 벅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