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서양 문명의 발원지, 그레데섬
아테네 공항에서 남쪽으로 308km를 가면 그레데섬의 헤라클리온에 도착한다. 유럽 최초의 문명이라 할 수 있는 미노아 문명(B.C. 2700~1500)의 중심지는 헤라클리온 공항에서 남쪽 5km의 크노소스궁전이다.
이 궁전은 헬라 문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아테네의 테세우스가 크노소스궁전에서 위는 소, 아래는 인간 모양인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그리스 신화의 미궁 이야기는 미노아 문명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궁전 중심부에는 궁전과 왕의 보좌가 있고, 북쪽 면에는 붉은색 기둥 안에 미노타우로스의 벽화까지 복원해 놓았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북쪽 항구 근처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데, 황소상과 사자상, 운동 경기와 여신상, 두 뿔 제단, 청동 도끼, 헬라어 선형 문자 접시 등이 유명하다.
블레셋의 고향
이집트 룩소의 람세스 3세(B.C. 1184~1153)의 장례식장에서 발견된 벽화에는 블레셋이 이집트로 들어와 전쟁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3세는 겨우 그들을 가나안 쪽으로 밀어붙였다.
블레셋은 이집트 정복에는 실패했지만, 가나안해안 평야 지대로 밀고 들어가 그곳에서 블레셋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가드, 에그론,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라는 다섯 개의 도시에 정착해 연합 도시 국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500여 년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가시 역할을 했다.
바울이 로마 호송 중 들른 미항
바울은 로마로 호송되는 중에 미항을 들르게 되는데, 이곳은 그레데섬의 남쪽에 있다. 어렵게 도착한 바울기념교회에는 관리인조차 없어, 찾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관리하게 돼 있었다. 바울기념교회 동쪽에는 아직도 작은 항구가 있고, 서쪽 면 내려가는 곳에 바울이 머물렀다는 기념동굴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바울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험한 행로를 갔다. 그러나 그는 이 아픔의 장소를 기억해 로마 감옥에서 풀려난 후 다시 들러 복음을 전했고, 디도를 이 섬에 남겨 교회를 든든히 세우도록 했다. 이름대로 아름다운 항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한 항구다.
미항은 헤라클리온 공항에서 해발 2,456m의 이다산 북쪽 산지를 넘고 또 한 산지를 넘기까지 65km를 가야 한다. 또 마지막 산지를 통과해 해변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길이 험해 찾는 이가 거의 없다.
그레데에서 복음을 전한 디도
그레데섬은 사도 바울의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딛 1:9)라는 주장처럼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진 섬이었다.
바울은 베냐민 사람이다. 그의 조상이자 자신과 이름이 같은 사울왕이 블레셋 사람, 즉 그레데인에게 전쟁에 패해 죽었다. 조상의 원수의 나라에 와서 복음을 전할 때 이런 마음이 반영됐을까? 그러나 바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용서를 선포하셨던 것처럼, 원수의 고향에서 복수 대신 복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