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이스라엘의 머리, 풍요로운 단
우리나라를 ‘백두에서 한라까지’라고 지칭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전체를 말할 때 ‘단부터 브엘세바까지’라 한다. 단은 이스라엘 최북단인 헤르몬산에서 시작되는 요단강의 세 근원 중 하나다. 겨울에는 눈 녹은 물이 솟아나고, 건기인 여름에는 헤르몬산의 지하수가 솟아나 마르지 않는 샘을 유지한다.
분명히 단은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운 땅이자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이어 주는 해변 길이 지나는 곳이다. 그러나 평화롭다는 것은 일시적이었고, 국제 분쟁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침범당하는 곳이 단이었다. 이런 면에서 단은 최북단에서 적을 맞아 싸워야했다.
가나안 시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러 갈 때 이곳은 단이라 언급되지만 원래 레셈, 라이스, 혹은 바알갓이라 불렸다. 단은 자연 보호 지역일 뿐 아니라 수많은 역사를 품은 유적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아브라함 때인 중기 청동기 시대의 흙벽돌 성문과 이스라엘 시대 성문, 여로보암의 금송아지가 세워졌던 신전이 발굴됐다.
단의 유적, 아브라함 시대의 성문
아브라함 시대의 성문은 단의 유적 중 가장 늦게 발굴됐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게 잡혀간 것을 알고, 헤브론에서 210km가 넘는 길을 318명과 함께 추격했다. 그는 유목민 정신대로, 기업 무르는 자로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조카를 구하고자 했다. 그는 단에 와서 그돌라오멜을 이길 비책을 생각해 냈다. 단에는 나무가 많아 밤에 습격하기 좋았을 뿐 아니라,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풀려나 도망가거나 반격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밤에 게릴라 전법으로 그돌라오멜 군대를 쳐부순 것은 적절했다.
단 지역을 접수한 아브라함은 다메섹 왼편인 북쪽 호바까지 추격했다.
다윗의 이름이 발견된 성문 앞 광장
단의 남쪽에는 철기 시대의 이스라엘 성문과 성문 앞 긴 의자가 인상적이다. 룻기 4장 1절에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라는 언급처럼, 이 성문에서 보아스가 성문 위쪽에 마련된 자리에 올라가 롯의 기업 무르는 자로 결정되는 장면을 재현해 놓았다.
또한 성문 앞 광장에서 아람 군대가 단을 차지하면서 다윗의 집을 점령했음을 자랑하는 비문이 발견됨으로써, 성경 외의 문서로는 ‘다윗’이라는 이름이 이때 처음으로 확인됐다.
우상의 도시,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단 지파가 이주할 때 미가의 집 안에 있던 신상을 강제로 빼앗아 단으로 가져갔다. 이후 여로보암왕이 분열 왕국을 이룰 때 예루살렘으로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고자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뒀다. 여로보암왕은 단 지파가 가져온 미가의 신상을 이용해 금송아지를 섬기는 신전을 만들었다. 여로보암이 만든 금송아지 죄는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그의 죄가 됐다.
단은 풍요로운 도시이지만 우상의 도시였다. 이름대로 다른 사람을 재판하고 심판해야 할 지파가 우상으로 인해 심판받았다. 거룩함을 잃은 백성의 최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