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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03월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 막달라(막 8장)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 (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 막달라(막 8장)

달마누다, 마가단 등으로 불리는 막달라는 막달라 마리아의 고향으로, 디베랴 북쪽 약 5km 지점에 있는 고대 항구다. 

막달라는 ‘망대’라는 뜻으로, 이곳에 망대를 세웠을 수도 있다. 막달라는 교통의 요지로, 남북으로 이어진 해안 길이 서쪽 지중해 방향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삼거리로 이뤄져 있다. 

또한 항구에는 큰 배가 정박할 수 있어 갈릴리바다를 건너 어디든 갈 수 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게네사렛에서 두로와 시돈으로 가실 때 막달라를 지나셨다. 배를 타고 데가볼리 지방에서 오실 때나 벳새다로 가실 때도 막달라를 경유하셨다.


예수님 시대에 번성한 행정 중심지

막달라는 헬라 시대, 특히 하스모니아 왕조 때 발달해 예수님 시대에 크게 번성했다. 유대 역사가인 요세푸스에 따르면, 막달라가 티베리아스와 함께 이 지역의 주요 행정 중심지였다고 한다. 이 마을은 자체 원형 경기장과 수로가 있을 만큼 중요했으며, 예수님 당시 인구가 4만 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막달라는 1차 유대인 반란 동안 열심당의 근거지였으며, 유대인은 로마인에 맞서 이곳에서 대규모 해전까지 벌였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패배로 도시 주민 1만 2천 명이 티베리아스 극장에서 살해당했으며, 6천 명은 고린도운하를 건설하는 데 파견되고, 3만 명이 노예로 팔렸다. 이후 바그코크바 반란(주후 66~73년)과 대홍수(주후 100년경)로 인해 예수님 시대의 주거지는 버려지고, 약간 남쪽에 작은 마을로 존재하다 사라졌다.


특별한 유물과 유적의 발견

고고학자들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주최로 발굴을 시작해 2009년 예수님 시대의 회당을 발굴했다. 이 회당은 막달라를 자주 방문하신 예수님의 발길이 깃든 곳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막달라 스톤’이라는 사각 모양의 특별한 돌에는 1세기의 일곱 촛대 모양과, 막달라 특유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또한 예수님 시대에 타고 다니셨던 갈릴리 배 모양이 그려진 모자이크도 발견돼, 당시 상황을 추측할 수 있다. 

회당 남쪽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시장이 있다. 시장 남쪽에는 가옥 군락이, 그 옆에는 모자이크 바닥을 한 부유한 집들이 발굴됐다. 막달라의 항구는 예수님께서 시장과 회당을 지나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하고, 막달라 마리아를 만나 치유하신 역사적 장소다.


예수님과 막달라 기념처

2014년에 건립된 ‘둑 인 알툼’(Duc In Altum, ‘깊은 곳으로 가라’는 뜻) 성당에는 예수님 시대의 배 모양으로 단상을 만들어 놓았다. 여러 예배 처소가 있는데, 곳곳에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장식해 놓았다.

예수님께서는 막달라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곧 죽은 자 가운데서 3일 만에 살아나는 기적을 보여 주리라고 말씀하셨다(마 16:1~4).

아르벨산을 배경으로 하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동상을 보노라면, 예수님을 사모하며 따랐을 막달라 마리아의 신실한 믿음이 진한 향기로 전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