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리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아브라함이 살고 야곱이 찾았던 하란
하란은 유브라데강과 발리크강의 합류점에서 북쪽 100km 지점의 넓은 평야 중앙에 위치하는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하란은 밧단과 같은 장소로 여겨진다(창 48:7). 밧단은 ‘밧단 아람’, ‘아람 나하라임’이라 불리는데, 하란이 유브라데와 티그리스 두 강(나하라임) 사이에 있는 평야를 가지고 있어 불린 이름 같다.
달 신을 섬겼던 앗수르의 마지막 수도
하란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북부 가장자리에 위치해, 유목민의 침략이 많았다. 크게는 헷 왕국과 앗수르, 헬라와 바사(페르시아), 바사와 로마가 이곳에서 끝없이 주도권 다툼을 했다.
특히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1세(주전 1115~1077년)는 성을 요새화하고 ‘신’이라는 달 신전을 건설했다. 하란은 앗수르가 바벨론에게 마지막까지 항전한 장소로 주전 609년에 함락됐다. 그러나 달 신을 섬기던 바벨론은 ‘신’ 신전을 재건하고, 신전의 대사제로 나보니두스왕의 어머니를 세웠다.
에스겔서에서 하란은 두로와 무역을 하는 유명한 상업 도시 중 하나로 언급된다(겔 27:23). 이후 주후 8세기 압바스 왕조가 다스리던 시대에 하란은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더불어 중동의 2대 학문 중심지가 된다.
리브가를 만난 야곱의 우물이 있던 하란
하란으로부터 1km 외곽에 ‘야곱의 우물’이라 불리는 장소가 있다. 아브라함의 종이 이 우물 곁에서 아브라함의 며느릿감의 조건을 놓고 기도했다. 그는 나그네와 낙타에게 물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손님 대접’을 잘하는 여인을 놓고 기도했다(창 24:10~12).
그러나 사실 이는 좀 무리한 기도였다. 하란의 우물은 5m 정도를 내려가야 하는 지하 우물이다. 낙타는 목이 마를 때 120~200리터까지도 마신다. 그러니 낙타 10마리에게 물을 마시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그런데 얼마 후 도착한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종에게 물을 줄 뿐 아니라 낙타들에게도 ‘배불리’ 마시게 하겠다고 했다(창 24:19). 그녀는 분명히 영육 간에 강건한 여인이었을 것이다.
하란에서 12지파를 탄생시킨 야곱
야곱은 브엘세바에서 출발해 하란에 올 때 20일 이상이 걸리는 먼 길(약 800km)을 왔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살면서 레아와 라헬과 결혼해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하란은 아라비아사막 북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낮과 밤의 일교차가 극심했다. 여름엔 50℃까지 오를 정도로 더웠고, 겨울엔 영하 가까이 떨어져 추웠다. 이곳은 나무가 없어서 흙으로 집을 지었고, 연료도 소똥을 사용했다. 강수량이 적다 보니 천장을 막지 않아 위가 뻥 뚫려 있는데, 이런 가옥은 더위와 추위를 이기는 데 제격이다. 이런 환경 중에서 야곱의 열두 아들, 12지파가 탄생했다.
여름에 하란을 방문했을 때 너무 더워서 탈이 난 적이 있다. 이런 여름의 더위와 겨울의 추위를 이기며 성심을 다했던 야곱의 고백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창 3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