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석 작가(문화 연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
지난 시간에 경청과 대화, 독서 후 나눔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이 모든 활동은 누구와 함께 나눠야 할까요? 물론 누구와도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겠지만 가장 우선해야 하는 사람은 바로 친구예요.
한자어로 친구(親舊)는, ‘가깝다’, ‘친하다’라는 뜻의 친(親)과 ‘오래’라는 뜻의 구(舊)가 만나 ‘가깝게 만나고, 오래 사귄 사이’를 의미하는 단어예요. 여러분의 친구는 학교나 학원, 혹은 교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생활을 하는 이들이죠.
친구와는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교회에서 예배도 함께 드리죠? 이처럼 친구는 여러분과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요.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되지요. 더욱이 친구 관계가 지닌 힘은 자발성에 있어요. 가족은 여러분이 택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친구는 여러분이 택할 수 있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친구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핵심은 ‘이야기’에 있어요.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여러분과 친구들은 서로 비슷해지게 돼요. 각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의 이야기에 섞여 들기 때문이에요. ‘내’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커 나가는 것이죠. 이 과정에는 ‘이야기’가 중요해요.
사람의 본질은 이야기에 있어요.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에요. 이야기하는 능력은 원래 하나님 형상의 일부예요. 왜냐하면 이야기는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만들고, 사회를 만들고, 나아가 세상과 문화를 만들지요.
이야기로 세상을 만든다는 건, 바꿔 말하면 이야기에 담긴 틀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뜻이기도 해요.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건, 이야기를 나누는 상대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즉, 여러분은 친구와 같이 세상을 바라보고, 같은 길을 걸어가는 거죠.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볼게요. 앞에서 언급한 대로라면,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면 여러분의 친구를 보면 될 거예요. 여러분의 친구가 바로 여러분을 비추는 거울일 테니까요. 결국 여러분이 어떤 친구와 시간을 보내느냐는 매우 중요해요. 좋은 친구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면 여러분은 더 좋은 사람이 될 뿐만 아니라 그만큼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좋은 우정의 사례: 잉클링스
좋은 친구들이 세상을 바꿔 나가는 하나의 사례를 살펴볼게요.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C. 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는 현대 판타지의 기본 틀을 만들어 낸 작품이에요. 그런데 톨킨과 루이스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예요. 둘 다 옥스퍼드대학교의 교수였고, 기독교인이었으며, 이야기의 힘에 매료된 사람들이었어요.
이들은 동화나 전설, 신화 속에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가 암시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1930년대 초에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잉클링스(Inklings)라는 모임을 결성해요. 잉클스는 ‘모호하고 완성되지 않은 암시와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에요. 이들은 <독수리와 아이(The Eagle and Child)>라는 카페에서 만나 웃고 떠들며 친목을 다졌어요.
톨킨은 루이스의 격려 가운데 『호빗』과 『반지의 제왕』의 초고를 발표했어요. 루이스의 끝없는 격려가 위대한 판타지가 탄생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거죠. 루이스 역시 『나니아 연대기』를 포함한 여러 작품을 여기에서 발표했어요. 소박한 친목 모임이 현대 판타지의 모태가 된 셈이죠.
사실 톨킨과 루이스의 작품 활동은 교수로서의 품위에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당시 사회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잉클링스는 그들을 계속 응원했고, 그 응원에 힘입어 톨킨과 루이스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 모임이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판타지가 태어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나니아 연대기』와 『반지의 제왕』은 잉클링스라는 모임에서 무르익은 우정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은연중에 기독교 진리를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요.
여러분이 친구들과 모여 웃고 떠들며 서로의 꿈을 격려한다면, 이처럼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의 꿈을 격려해 줄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게 중요해요. 물론 여러분도 친구의 꿈을 격려해 줄 수 있어야겠지요? 그런 좋은 친구 관계 속에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멋진 제자로 성장하게 되고, 또한 이 세상을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계 11:15)가 되도록 하는 데 쓰임받게 될 거예요.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