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임사무엘 목사 (분당우리교회)
지난겨울, 전 세계에서는 애니메이션 <겨울 왕국>이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기존 ‘쿵푸 팬더 2’가 세운 관람객 506만 명을 넘으면서 애니메이션의 새 역사를 썼다. 전문가들은 흥행 이유로 두 가지를 들었다. 첫 번째로는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작품성, 두 번째로는 뛰어난 음악성을 자랑하는 배경 음악이었다. 실제로 문을 두드리며 ‘Do you wanna build a snowman?’이라고 노래하는 부분은 사람들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패러디 되었다.
하지만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것은 이 두 가지 요소만이 결정적인 흥행 원인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아마도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 아닐까? 주인공 ‘엘사’가 세상을 향해 방문을 잠그고, 사람들로부터 상처받고 떠나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랑으로 인해 겨울 왕국에 봄이 오는 것을 보며 상처받고 얼어붙은 내면이 회복될 수 있다는 따뜻한 희망을 갖게 된 것이다.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
심리학 용어 중에 ‘두 번째 화살에 맞지 말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이후에 다시 상처받는 것을 의미한다. 받은 상처에 대한 자책, 분노, 열등감으로 자기 스스로 더 큰 상처를 주는 것이다. 남에게 작은 상처를 받고, 정작 큰 상처는 자기 자신에게서 받는 아이러니다. 십대들이 자주하는 “이런 제 모습이 싫어요!”, “제 자신이 한심해요!”라는 말은 두 번째 화살을 맞은 친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얼마 전 인상적인 인터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헐리웃 최고의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이 독일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기자가 물었다. “내가 당신에게 니그로(흑인 비하 발언)라고 말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프리먼이 답했다. “전혀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 말은 나랑 상관이 없고 그것은 잘못된 단어를 쓰는 당신의 문제니까요.” 그는 두 번째 화살에 맞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되돌려 주었다.
감히 뉘 집 자식인 줄 알고
이런 면에서 상처는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다. 화살이 날아올 때, ‘내가 그런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며 날 향한 말이라고 인정할 때, 상처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화살은 상처가 되지 않는다. 결국 상처는 외부의 문제가 아닌 내부의 문제, 즉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특이한 수학 선생님이 계셨다.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내 문제를 풀게 하고, 못 풀면 뺨을 물어서 상처를 내는 선생님이었다. 수학을 못했던 나에게 그 시간은 긴장과 공포의 시간이었다. 하루는 내가 문제를 풀지 못해서 뺨에 이빨 자국을 가진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날 나는 어머니께서 그렇게 화내시는 모습을 태어나서 처음 봤다. 목사님의 사모님으로서 온유하고 평정심을 잃지 않던 분이셨는데 그날은 달랐다. 학교를 뒤집어 놓으셨고, 결국 선생님께서 공식적으로 사과하시며 그 이후로는 물지 않으셨다. 지금도 그 일이 내게 상처가 되지 않는 이유는 흥분한 어머니께서 계속 하셨던 말 때문이었다. “감히! 뉘 집 자식인 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집 자식’이 되어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됐다는 의미다.
용서는 상처를 지울 수 있다
2014년 겨울 수련회는 내게 가장 힘들었던 수련회였다. 수련회 말씀 준비보다도 가기 전부터 수련원 측과 부딪히는 점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수련원 측에서 일방적으로 수련회 장소에 다른 팀을 받은 것을 통보해 왔고, 심지어 둘째 날 집회 이후 전통적으로 진행해 온 셀러브레이션(새벽까지 찬양하는 시간)에 대해서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이어갈 무렵, 급기야는 수련원 측에서 수련회 3일 전에 계약 파기를 선언해 왔다. 처음에 들었던 심정은 분노와 복수심이었다. 교회 안에 있는 법률 전문가들이 떠올랐고, 받을 수 있는 피해 보상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계속 하나님께서 정반대의 마음을 주셨다. “네가 용서해라! 네가 잘못했다고 해라!” 상처받은 내게는 너무나 가혹한,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용서할 수 있어서 용서한 것이 아니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용서하기로 한 이상한 용서였다. 다음 날 전화를 걸어서 대뜸 죄송하다고 말하며 용서를 구했다. 수련원 측의 규율을 존중하지 못한 것과 내부 사정을 몰랐던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갑작스러운 사과에 수련원 측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오히려 최고 담당자가 공손하게 전화를 받았고, 교회의 요청에 대해 내부 회의를 해보겠다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결과는 수련원 측 내부 규율에도 불구하고 처음으로 새벽 5시까지 찬양 집회가 가능하다는 기쁨의 소식이었다.
상처가 있기에 용서할 수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이 쓴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책이 있다. 그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약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약했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칼과 창으로 싸우던 기존 방식이 아닌 다른, 물맷돌이라는 방식으로 싸워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받은 상처에 대한 동일한 방식의 복수는 반드시 패배한다. 하지만 상처가 있기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즉 사랑과 용서로 행한다면 약하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향해 말씀하신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동원해서 그들에게 복수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셨고, 결국 십자가는 승리했다. <겨울 왕국>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동생 안나가 언니 엘사를 대신해 희생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유 없이 자신을 모질게 대하고 힘들게 했던 언니에 대한 용서와 사랑의 행위였다. 그러면서 언니의 마음이 녹게 되고 안나도 살아나며, 겨울 왕국에는 기다리던 따뜻함이 찾아오게 된다. <큐틴> 가족 모두가 십자가 사랑의 능력으로 따뜻한 겨울 왕국을 만드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란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