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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5월

100점짜리 부모님 만들기

과월호 보기 임사무엘 목사 (분당우리교회)

최근 미국에서 이슈가 된 ‘레이첼 사건’이 있다. 부모에게 반항해 가출한 여고생이 부모를 상대로 학비와 생활비를 대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날이 선 공세에 부모는 재판 내내 눈물을 흘렸다. 치열한 법정 공방과 달리, 판사는 레이첼 측을 꾸짖으며 재판을 마무리 지었다. 서글픈 것은 ‘부모의 양육책임이 어디까지인가?’라는 법적 문제보다, 이런 재판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었다. 물론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그럼에도 공감이 되는 이유는 2014년 대한민국의 부모님 역시 ‘피고석’에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청소년 사역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하나 있다. ‘부모님은 자신을 구속하고 잔소리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동일하게 부모들을 만나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우리 애는 절대 그럴 애가 아니다’라는 말과 ‘그래도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부모님은 천사
옛날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짧은 이야기가 있다. 한 아기가 하늘에서 세상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세상으로 보내지기 전날 밤, 아기는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님!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실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렇  게 작고 무능한 아기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라고 그러세요?” 하나님은 말씀하셨다. “너를 위한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지. 그 천사가 널 돌봐줄 거란다. 못 찾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단다. 너는 그 천사를 ‘엄마’라고 부르게 될 테니.”
  지금도 처음 그 이야기를 접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왜? 엄마를 천사로 비유했을까? 오래도록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천사는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 그가 천사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부모님들은 모두 부족한 점은 있지만 자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살아가는 가장 고귀한 천사이다.

 

가까운 악의, 멀리 있는 선의
안타깝게도 우리는 현실에서 천사를 잊고 살아간다. 부모님을 ‘잔소리하고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막는 감시자’로 여긴다. 한국청소년개발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허물없이 대화하는 인물’에서 아버지는 5위, 어머니는 4위에 그쳤다.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같은 공감대를 가진 사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친구는 좋지만 부모님에 대해서는 “글쎄요···”라고 말하는 청소년들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기독교 변증학자 C.S 루이스는 말했다. ‘마귀는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는 악의와 나쁜 마음을 품게 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미지의 선의를 갖게 한다.’ 이는 무슨 말인가?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소중함은 못 보게 하고, 멀리 있는 좋은 사람들과 막연하게 좋아 보이는 것들을 동경하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고 함부로 대하게 되면 현실은 지옥으로 변해간다. 그렇기에 ‘천국’은 우리 현실에서 주변의 소중한 것들에 대해 눈을 뜰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100점짜리 부모님
교회에서 학생들을 훈련시킬 때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100점이다! 리더로 선발된 그 순간부터 너희들은 100점짜리다!” 이 말을 하면 놀랍게도 부족했던 아이들 역시 멋진 리더로 성장하게 된다. 그들을 믿어주고 기대한 만큼 성장하고 변화되는 것이다. 부모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원래부터 좋은 부모님은 없다. 부모님께 100점을 드릴 때 100점짜리 부모님이 되는 것이다. 성경의 노아는 술에 취해 옷을 벗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그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었다. 100점을 주는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아의 자녀 셈과 야벳을 통해 우리가 부모님께 가져야 하는 두 가지 태도를 발견한다.


첫째, 부모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하라.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장막 안에서 잠이 들었다. 가장 먼저 본 함은 그것을 두 형제에게 알렸다. 부모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부모님의 연약한 점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자녀 역할이 처음인 것처럼 부모님 역시 부모 역할이 처음인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이기 때문에 연약함과 부족함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연약함을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내가 먼저 부모님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100점을 드릴 때 부모님께서 부족한 내게 10000점을 주는 놀라운 관계의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둘째, 부모님의 부족한 점을 덮어주라. 함과 달리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부족함과 수치를 덮는다. 자신들이 뒷걸음질 쳐서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않고 조용히 옷을 덮어드리고 나온 것이다. 부모님의 부족한 점이 드러날 때 가장 먼저 상처 받는 것은 자녀들이다. 부모의 말과 행동에 상처 받고 절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약점과 수치를 보인 사람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자녀가 부모의 연약한 점을 덮기 전에는 여전히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아를 주정뱅이로 만드느냐 아니면 믿음의 인물로 만드느냐는 철저하게 그의 수치를 본 자녀들의 행동에 달려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판단할 수 없는 사랑
유명한 ‘파라디의 법칙’을 발견한 파라디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액체가 묻은 천을 주고 분석해 보라고 했다. 학생들은 약간의 물과 염분을 발견했을 뿐, 이렇다 할 물질 성분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때 파라디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액체는 자기 아들을 걱정하고 찾아 온 어머니가 흘리고 간 눈물이다. 여러분들이 배우려고 하는 과학의 힘으로는 그 눈물이 함유하고 있는 어머니의 애정을 분석해 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부모님의 애정과 눈물은 판단하고 분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정의 달, 5월! 부모님께 받은 사랑에 감사하며 “우리 부모님 100점!”을 외치는 <큐틴> 친구들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