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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6월

제대로 넘어지는 법부터 배우자

과월호 보기 임사무엘 목사 (분당우리교회)

얼마 전 한 고등부 학생의 아버지를 만난 적이 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재수학원의 수학 팀장이었다. 자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됐다. “목사님 요즘 학생들의 가장 큰 특징이 뭔지 아세요? 너무 쉽게 포기한다는 거예요. 고3 학생들의 경우에 빠르면 4월에 재수를 결정하는 학생도 있습니다. 재수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린 한 가지 결론이 있다.
약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넘어지는 법을 배운 적이 없어서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유도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낙법’이다. 다치지 않게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래야 언제든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는 법부터 배우는 것이다. 청소년 시기는 이기는 법이 아니라 지는 법, 제대로 넘어지는 법을 배우는 시기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미국에서 세계 인구의 0.0001%에 해당하는 국가 지도자 혹은 CEO 중에 외동아이는 거의 없다고 발표한 적이 있다. 외동아이는 혼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실패해 본 경험이 적다는 아주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실패’라고 하면 다들 부정적인 의미만을 생각하지만, 실패에는 분명 아주 큰 힘이 있다. 실패는 오히려 더 강해지는 기회가 된다. 다른 방식으로 도전하게 하고, 꿈을 향해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만드는 능력도 있다. 에디슨의 말처럼 전구를 만드는데 999번 실패했다면 그것은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999가지의 방법을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포기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포기는 그대로 끈을 놓아버리는 것. 중간에 그만 두는 것이 포기이다. 포기에는 어떤 가능성도 발견할 수 없고 발전도 없다. 누군가 내게 포기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자기합리화’가 포기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포기란 김치 담글 때’ 외에는 사용할 이유가 없는 말이다. 포기하려거든 차라리  실패하라. 실패하는 것이 정말 멋진 모습이고, 제대로 넘어지는 것이다.

 

영광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슬램덩크>라는 인기 만화가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농구 초보 강백호가 진정한 농수 선수가 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만화책 24권을 보면 ‘산왕’이라는 최고의 팀과 맞붙는 가운데 큰 점수차로 뒤쳐지게 된다. 그때 강백호가 자신의 감독에게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감독님을 영감이라고 부른다) “영감님! 영감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국가대표 때였나요? 난 바로 지금입니다.” 이후 경기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뛰어서 결국 역전승을 만들어 낸다. 포기의 순간을 영광의 순간으로 만든 것이다.


중요한 것은 포기에는 ‘이미’ 공식이 적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늦었어! 이미 해 봤는데! 이미 우리 집안은 안 돼!’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이미 늦었다는 생각 안에 갇히게 될 때, 절망하게 되고 포기하게 된다. 반면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을 말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아직 가능성이 남아있고, 아직 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미’가 아닌 ‘아직’을 믿을 때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

 

End or And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베드로의 모습이 나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 척 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어부가 된다. 초라한 자신을 발견하고 제자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베드로에게 다시 찾아와 물으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이다. 끝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 베드로에게 다시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End를 And로 바꾸어 주셨다. 이것을 통해 <큐틴> 친구들이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두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잃어버린 꿈을 회복하라!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이다. ‘시몬’은 듣는다는 뜻으로 방향 없이 주변을 따라 살았던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처음 만나시면서 그의 이름을 ‘반석’ 혹은 ‘바위’라는 뜻을 가진 ‘게바’로 바꿔주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는 게바의 히브리식 이름이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만나실 때 ‘베드로’라고 부르지 않으신다. 처음 만났을 때의 이름 그대로 ‘시몬’이라고 불러주신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선물로 주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내게 주님은 꿈을 주신다.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너 혼자였을 때는 반석일 수 없지만 나와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어 주시는 것이다. 이 손을 잡는 것이 ‘믿음’이고,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둘째, 믿음을 선포하며 살아가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물어 보신다. 여기에는 세 번 모른 척 한 베드로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의미가 있다.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자기 입으로 분명히 말하면서 선포하기를 원하셨다는 것이다. 사람은 자신이 말한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사랑한다고 분명히 말했으니 그대로 살게 될 것이라고 약속해 주신 것이다. 우리 역시 믿음을 선포하며 살아가야 한다. 이사야 57장 19절에는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는 나 여호와가”라고 나와 있다. 내가 말한 그대로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이뤄 가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믿음의 말과 긍정, 확신의 말을 해야 한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분명히 선포했을 때, 그는 이름처럼 흔들리지 않는 바위가 되었다.

 

한 쪽 문이 닫힐 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 ‘마리아’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극중 그녀가 했던 말 중에서 잊혀지지 않는 대사 한 구절이 있다. ‘하나님께서 한 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한 쪽 문은 열어두신다.’ 문이 닫히고 이제 끝이라고 생각되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그리스도인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미’보다 '아직‘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사람이다. 6월 한 달, <큐틴> 친구들 모두가 포기하지 말고, 제대로 넘어지고 다시 멋지게 일어나기를 꿈꿔본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