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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학교,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과월호 보기 김지태 목사 (부산 영안교회)

요즘 학교, 이대로 괜찮을까요?
최근 저는 한 장의 사진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 고등학교의 교실 풍경이었는데, 수업 시간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중요하지 않은(?) 수업이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그 사진을 본 제 마음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얼마 전 저희 고등부 학생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본인은 아니라고 했지만, 긴 대화를 통해 왕따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말을 잘 못하고, 어리숙하지만 나쁜 행동을 하는 친구는 아닙니다. 오래 전 가르쳤던 학생 중에 ‘뒤에서 1등’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은 그 친구에게 학교는 지옥이었다고 합니다. 공부를 못하니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고, 학교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가까이하기에 너무 먼 당신, 학교!
학교! 대부분의 학생들이 하루 10시간 이상, 일주일에 50시간 이상을 머무는 장소입니다. 중·고등학생들의 거의 모든 일상이 학교에서 이뤄집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친구는 좋지만, 학교는 싫습니다. 내 인생을 위해 공부는 하지만,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은 힘듭니다. 등교할 때와 하교할 때의 마음이 정반대입니다. 어쩌다가 학교가 왜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는 존재가 된 걸까요? 언제까지 하루하루를 학교에서 고통스럽게 보내야 할까요? 학교는 진정 행복한 공간으로 바뀔 수 없는 걸까요? 솔직히 여기에 대해 저 역시도 정답을 찾을 수 없고, 확언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오랜 시간 십대들과 함께하며 고민하고 도전했던 생각들을 오늘, 여기서 풀어보려 합니다. 

 

학교가 즐겁지 않은 이유
학교가 달라지기 위해서는 학교가 ‘나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대학을 가기 위한 과정이거나, 내 미래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주는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란, 많은 학생들이 공존하며 내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지 고민하는 곳입니다. 또한 ‘지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것을 현실화 시키도록 돕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학교는 높은 단계로 올라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잘하는 친구나 못하는 친구나, 성격이 좋은 친구나 나쁜 친구나, 재능이 많은 친구나 없는 친구나 모두 학교가 즐겁지 않게 된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그 공간이 싫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지금! 바로 여기! 내 사역지!
첫 번째는 바로 ‘학교 자체에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내가 기쁘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지금! 바로 여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기쁨과 행복은 대학을 가서 이루는 것도 아니요, 성적이 오른다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최근 학교를 자퇴하는 학생들이 많아졌습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론적으로는 ‘학교와 학교에서의 배움에 신뢰를 잃어서’ 입니다. 그리고 검정고시를 보거나 유학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학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학교에 대한 신뢰를 잃어서 떠났지만, 친구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과 추억이 그리운 것입니다. 짜여진 틀 안에서는 느끼지 못했지만, 학교를 나가 밖에서 그 안을 들여다보니 애정을 느끼게 되고 소중함을 발견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학교가 나의 사역지’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학교에서의 범죄 예방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입니다. 벌점 제도를 도입하고 CCTV를 증설하며 #0117이나 학교 지킴이 등을 세우고, 경찰들이 수시로 순찰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마치 찢어진 옷을 계속 꿰매서 입는 것과 같아서 결국 나중에는 결과가 더 심각해지게 됩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을 절대 외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는 수술처럼 학교 내부에서 고치고 치료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바로 ‘크리스천 청소년들’입니다. 바로 여러분입니다. 하필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힘들게 학교 다닌다고 생각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학교로 보내신 것입니다. 청소년 선교사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교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학교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 학교를 위해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까요? 우리 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위로하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 우울증이 늘고, 불우한 가정환경과 입시, 불안한 미래, 관계의 어려움 등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슬픔에 빠져 있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아무도 그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위로와 격려입니다. ‘위로’는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위로의 셈법은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대항하는 것입니다. 학교 안에 퍼져 있는 모든 악한 것들과 거짓과 속임수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학교 폭력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왜! 아무도! 옳지 않은 것에 대항하지 않는 것일까요? 만약 우리마저 학교에서 침묵한다면 학교는 희망이 없습니다. 악한 것들에 맞서지 않는다면 악한 세력들이 우리를 조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뿌린 대로 거두리라!
저희 교회에는 200여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바라볼 때마다 감사한 것은 교회에 잘 나와서가 아니라, 그중 적어도 몇 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참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학교를 믿는 자들의 손에 맡기셨습니다. 마치 농부가 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고, 지속적으로 가꾸듯이 우리 또한 학교를 땀 흘려 가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헌신하며 수고할 때 우리의 학교는 선하게 변화될 것입니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