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지태 목사 (부산 영안교회)
생명, 그 놀라운 신비
저는 돌이 갓 지난 딸이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지켜 본 ‘한 생명이 태어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그중 가장 신비로웠던 것은 ‘생명이 태어난 순간’과 ‘그 생명이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짜여진 성장 계획 속에 맞춰진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이 되자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한 진통이 시작되었고, 그 끝에 드디어 세상에서의 첫 하루가 열린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커 가면서 나와 눈을 맞추고 밝게 웃어 줍니다. 어느 순간 앉을 수 있게 되고, 기어 다니다가 서고 또 걷습니다. 또 저를 ‘아빠’라고 불러 줍니다.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저는 딸이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한 가지를 깨닫습니다. 그것은 ‘우리는 절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연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 ‘생명’이라는 축복을 받고 이 땅에 보내졌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은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아기 중 축복받지 못한 아기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인이 되어가면서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어린 시절, 기적 같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삶 자체를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저주하기도 합니다. 자기의 존재와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 채, 내안에 놀라운 생명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축복을 스스로 포기하기도 합니다. 너무 충격적이고 슬픈 일입니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요?
생명보다 소중한게 뭔가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이 세상의 속임수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속임수의 가장 큰 특징은 의도한 것만을 보게 하고, 진실된 다른 것들을 숨겨 버립니다. 그래서 보이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진짜인 것처럼 믿게 하는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을 이해할 때, 어떻게 할까요? 생김새, 옷 스타일, 소유하고 있는 것들, 능력 등을 먼저 보게 될 것입니다. 본질적인 모습보다 외적인 것에 집중합니다. 그것을 통해 상대방을 규정짓습니다.
자기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의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나의 외모, 내 소유, 내 능력, 내 성적, 내 학벌 등.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나의 것들과 다른 사람의 것들을 비교합니다. 그리고 남보다 더 높으면 교만하고, 남보다 낮으면 좌절합니다. 결국 ‘나’를 잃어버리고, ‘그것’에 집착하게 됩니다. 내 생명의 소중함보다 내가 걸친 하찮은 ‘그것’들에 집중하고 맙니다.
‘성적’이 생명보다 소중한가요?
매년 겨울, 수능 시험과 대학 입시가 마무리 될 즈음에는 뉴스를 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세상의 속임수에 빠져서 ‘나’말고 ‘그것’에 집착하며 소중한 인생을 포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이, 수능 점수가 낮은 것이 내가 원하는 대학을 가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변의 시선 역시 나의 본모습을 바라봐 주지 않고, 나의 부족함을 드러내고, 내가 이루지 못한 현실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자체가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을 비관하고 좌절하고, 자신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버리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세상의 악한 속임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나에 대해 깊이 생각하기
먼저는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점점 우리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머릿속을 바쁘고 분주한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우게 하고, 우리의 시선을 ‘그것’들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보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더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우리 안에는 놀라운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그런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존재와 특별함에 대해 깊이, 오래, 많이 생각해야 합니다. 나만이 가진 고유명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에 속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고,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려 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 9월, 저희 고등부 학생이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솔직히 가기 전까지 전 너무 불안했습니다. 러시아 유학은 참으로 생소했고, 언어 준비도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항공 우주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 하는데 결코 쉬워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 함께 식사하면서 힘들고 어려우면 반드시 돌아올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말이 저의 불안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발견했습니다. 솔직히 겁이 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실 것들에 대한 기대가 더 큽니다.” 저는 이것이 자기 자신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발걸음이라 확신합니다.
정답은 없어요
두 번째는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끊임없이 ‘이유’를 찾고 발견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정답을 정해 놓고 살고 있습니다. 좋은 성적을 받아 일류 대학에 진학하고, 괜찮은 직장을 얻어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인생은 절대 한 가지 정답으로 결론지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보편적인 계획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지 않으십니다. 삶이란, 수많은 과정을 통해 완성됩니다.
그 과정 속에는 높이 올라가는 순간도,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도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정답보다는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이유가 무엇인지, 이를 통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신지 끊임없이 물어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통해서도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며, 하나님의 방법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손을 놓지 마세요!
저는 학창 시절에 비관적인 가치관을 갖고 지냈습니다. 부모, 학교, 친구 모두 싫었고 무엇보다 제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가진 것들이 너무 형편없어 보였고, 제 인생이 오답 천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스스로 포기하려 했을 때 다행히 예수님을 만나 제 자신을 발견했고, 저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포기하고 놓아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생각되는 인생이라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무너졌어도 내일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지금 모든 것을 잃었다 해도, 조금 후에 다시 용기를 내고 힘을 내면 됩니다.
세상의 기준과 비교의식에 속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내’가 아닌 것들로 인해서 나의 존재와 가치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 캄캄하고 막막한 순간에도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절대로 놓지 않기를, 그분과 한 걸음씩 용기 있게 내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