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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자

과월호 보기 임사무엘 목사 (분당우리교회)

학습된 무기력
1967년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다. 가둬 놓은 강아지들에게 안전한 전기 자극을 주면서 그곳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반복된 탈출 시도의 실패 끝에 강아지들은 나중에 탈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그곳을 빠져나오지 않았다. 실패가 학습돼 더 이상 탈출의 시도조차 하지 않는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것이다. 사람인 우리에게도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이나 환경에서 바뀐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어쩔 수 없어. 내가 그렇지 뭘….”

 

사람마다 꽃피우는 시기가 다르다
요한복음 5장에는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38년 동안 병으로 고통 받은 병자였다. 정확하게 말해서 ‘학습된 무기력’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런 병자를 예수님께서 회복시키신다. 이를 통해 무기력을 이겨 낼 수 있는 두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사람마다 꽃피우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이다. 얼마 전 조선 시대 수명에 관한 통계 자료를 본 적이 있다. 일반 평민의 평균 수명이 35세 내외였으며, 의학 혜택을 많이 받은 왕의 수명은 46세 정도였다. 그러니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가 38년 동안 아팠다는 것은 이제 그가 죽을 때가 다 됐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 막바지에 꽃을 피우게 된다. 이는 사람마다 꽃피우는 시기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 인생의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해서 절망하거나 낙심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도 반드시 꽃 피는 하나님의 때가 있다. 단지 그 시기가 지금이 아닐 뿐이다.
둘째, 문제는 내부에 있다는 사실이다. 38년 된 병자의 진짜 병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다. 그는 자신을 치유하실 주님이 곁에 계신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이 곁에 계신데도 절망하는 영적인 병이 그가 가진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마찬가지로 ‘무기력’은 예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다. 상황이나 환경이 바뀌어서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계신 예수님이 나를 회복시켜야 낫는 것이다. 오직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다.

 

일어나 걸어라
옛 복음 성가 중에 ‘일어나 걸어라’는 찬양이 있다. 최용덕 씨가 절망과 무기력 가운데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회복시키심으로 다시 일어나 쓴 찬양이다. 1984년 9월 어느 날, 하는 일마다 실패했던 그는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삿대질을 했다. “하나님, 살아 계십니까? 그런데 제 인생은 왜 이렇게 비참합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용덕아! 나는 네가 실패하고 울고 있을 때에도 일어날 것을 기대한다. 이제 다시 일어나 걸어라. 내가 힘을 주겠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셨다고 한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겠다!” 8월 한 달 다시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학습된 무기력’을 극복하는 <큐틴> 친구들이 되기 바란다! 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