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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십대, 함께함으로 서로를 위로하라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누가 위로해 주나?
“목사님, 저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남자친구와 헤어진 십대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 있다. 전화기 사이로 새어 나오는 슬픔이 마음을 저리게 한다. 이별의 슬픔에 빠진 십대에게 최고의 대답은 ‘맛집’이다.
막 튀겨 나온 치킨 한 조각이면 이별의 아픔쯤은 한 시간 정도는 잊을 수 있다. 돼지고기가 잔뜩 섞여 있는 까만 소스의 간짜장 한 그릇으로 반나절은 충분히 기쁠 수 있다. 역시 십대의 이별에는 ‘음식’이 최고다. 맛난 음식은 이별한 이들을 위한 소중한 위로다. 
“목사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이제 막 15세가 된 남자 중학생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장례식장에서 만난 아이는 아버지를 잃고 눈물도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을 잊어버린 아이는 나를 보고 그제야 우는 법이 생각났는지 한참을 울었다.
십대도 어른들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있다. 너무 아프고 슬퍼 눈물조차 잃었을 때, 최선의 위로는 그저 옆에 있어 주는 것이다. 함께하는 것만큼 최고의 위로는 없다. 십대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겪고 있다. 십대에게는 위로를 위한 ‘맛난 음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위로는 ‘함께해 주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가 되다
‘초등학생 8시간 42분, 중학생 7시간 24분, 고등학생 6시간.’
2020년 통계청에서 제시한 청소년 수면 시간이다. 십대의 수면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또한 인간관계에 대한 만족은 2017년에 비해 0.6% 감소했다. 특히 낙심하거나 우울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있는 십대는 89.9%였지만, 정작 도움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된 인생의 초입에서 십대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위로다.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Viktor E. Frankl)은 2차 세계대전 중에 4개의 나치 강제수용소를 경험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프랭클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질문을 한다. 그의 책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에서 프랭클은 오늘날의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폭격당했다”라고 말하며, 인류의 대참사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한다.
프랭클은 수용소의 대학살 가운데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의미를 부여할 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의미가 돼 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신적 공명(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것)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공명이 바로 위로인 것이다. 십대에게도 공명할 수 있는 위로가 있으면 좋겠다.  


함께함으로 위로하라!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삼상 20:41b~42a).
사울왕에게 충성했고,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싸웠던 다윗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의 위협이었다. 잘하려고 할수록 미움받았던 다윗은 큰 상처를 받았다. 하지만 슬퍼하는 다윗 옆에는 요나단이 있었다. 사울왕을 피해 도망자가 된 다윗은 요나단이 함께함으로 그 삶에 의미가 다시 부여된다. 그리고 억울한 도망에서 함께함으로 위로를 받는다. 요나단의 위로가 다윗에게 새 힘을 줬다.
“우리가 환난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성경에서 ‘위로’로 번역된 단어는 ‘곁으로 부르다’라는 뜻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위로라는 말 속에는 곁에 두고 함께하며 보살핀다는 의미가 포함되는 것이다. 바울은 위로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밝힌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가 얼마나 큰 능력을 갖고 있는지 분명하게 말한다. 이 위로를 통해 바울은 자신이 겪을 환난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로가 바로 능력이기 때문이다. 위로는 그리스도인을 새롭게 한다.
십대여, 누군가의 위로자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