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십대, 보이는 것을 믿다!
“영상 보고 하면 돼요.”
4차 산업혁명의 초입에서 배움의 도구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있다. 영상을 통한 지식 전달 방법이다. 과거에는 전자 제품을 살 때마다 반드시 설명서를 읽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품을 사기 전부터 유튜브로 관련 영상을 보거나 인터넷으로 추천 제품들을 검색한다. 더 이상 설명서는 필요하지 않다.
“목사님! 영상으로 하면 안 돼요? 인터넷에 다 나오거든요.”
학교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 배움 플랫폼을 통해 이뤄지다 보니 성경도, 관계도, 감정도 온라인으로 충분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여기게 됐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이뤄져야 할 배움들이 인공지능을 통해 수치화되고, 지식뿐만 아니라 경험조차도 매뉴얼과 수치로 표시되는 정보화 시대 속에서 십대는 이제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암묵적 지식, Tacit knowledge!
영국의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는 《개인적 지식》이라는 그의 책에서 ‘암묵적 지식’과 ‘명시적 지식’을 구분해 설명했다. 여기에서 명시적 지식은 매뉴얼과 같이 누구나 보면 알 수 있는 지식인 반면, 암묵적 지식은 일반적으로 공유되기 어려운 노하우와 같은 지식으로 ‘글로 적힌 것’ 이상의 것들, 깊은 경험과 나눔을 통해서 얻어지는 지식이다.
과학 기술자 해리 콜린스(Harry M. Collins)는 이런 암묵적 지식의 중요성을 실험을 통해 설명했다. 어떤 회사가 엄청난 투자와 시간을 들여 만든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을 A그룹에게는 설계도와 매뉴얼만을 제공해 복제하게 하고, B그룹에게는 설계도 이외에 직접 회사 연구소에 방문하게 하고 문의와 회의를 통해 기술을 복제하게 했다.
과연 어느 그룹이 기술 복제에 성공했을까? A그룹은 기술 복제에 실패했고, B그룹은 성공했다. 이 실험을 통해 명시적 지식보다는 암묵적 지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언택트(Untact)가 강화되고 있다. 교류와 소통을 거부하고, 그저 매뉴얼을 통해 지식을 접하는 시간과 콘텐츠가 많아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십대에게는 암묵적 지식을 통한 생각의 깊이와 나눔의 전수가 더욱 절실하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 1:4).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는 거룩한 습관이 있었다. 아버지는 하루에 몇 차례 자녀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읽으며,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졌다. 또 이스라엘 백성은 위기 앞에서 회개하며 기도하는 훈련을 받았다. 나라의 위기와 고난 앞에서 지도자는 기도와 회개, 금식을 가르쳤다.
포로 세대였던 느헤미야도 어린 시절부터 어깨너머로 배운 선배들의 신앙을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삶에서 익힌 배움은 위기 앞에서 밝게 빛나는 법이다. 느헤미야는 폐허가 된 조국의 소식에 금식하고 회개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행 6:4).
초대 교회에 문제가 생겼다. 외지에서 들어온 사회적 약자 ‘헬라파 과부’(행 6:1)들이 초대 교회에서 베풀던, 매일 나눠 주는 양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를 원망함으로 분열이 시작됐고, 많은 헬라파 유대인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다.
그러자 제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예수님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께서는 갈등과 싸움이 있을 때마다 어떻게 하셨던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에는 무엇을 하셨던가? 예수님께서는 서로 갈라져 싸우던 백성을 위해 기도하셨다.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고, 직접 기도하는 방법까지도 알려 주셨다. 마지막 사명을 이루시기 위해서 겟세마네로 오르셨고,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다.
제자들은 교회 안에 발생한 혼란과 자신들의 한계 앞에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셨던 것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추억의 어깨너머로 예수님을 배웠다. 이제 십대의 차례다.
십대여! 말씀의 어깨너머로 예수님을 배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