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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8월

부모님의 신앙은 뜨뜻미지근?!

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아빠의 십대 시절, 믿음은 어땠을까

어느 날 아빠가 어디선가 들어 본 찬양을 흥얼거리고 있다. 믿음 좋은 십대는 아빠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평소에 교회 가는 것도 시큰둥하고, 믿음도 뜨뜻미지근한 것 같은 아빠의 입에서 찬양이 흘러나오는 것은 생소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대는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는 중고등부 때 어땠어?” 

 십대의 질문에 아빠는 잠깐 눈을 감고 자신의 십대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 어른들은 토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기타를 치며 찬양을 했다. 중고등부에서 회장과 부회장, 총무, 회계 등을 뽑아 전도사님들과 함께 주보를 제작했으며, 친구들을 초청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음식 경연 대회, 복음 성가 대회, 문학의 밤, 성탄 전야 새벽송 등 아빠의 십대 시절 이야기는 끊임이 없다. 

도대체 아빠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렇게나 다채롭던 아빠의 신앙 이야기는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신앙의 단절 현상

제임스 파울러의 신앙 발달 이론에 따르면 신앙의 성장은 평생 동안 7번의 질적 변화를 겪으며 단계적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이 단계는 순서대로 ‘0단계: 미분화된 신앙, 1단계: 직관적-투사적 신앙, 2단계: 신화적-문자적 신앙, 3단계: 종합적-관습적 신앙, 4단계: 개인적-반성적 신앙, 5단계: 접속적 신앙, 마지막으로 6단계: 보편적 신앙’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 중 3단계가 청소년기 신앙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3단계에서 4단계로 이어지는 성장이 가장 어렵다고 말한다. 3단계인 청소년기는 자신의 정체성 문제로 인해 힘들어하는 단계다. 가정의 영역을 넘어서서 학교나 학원, 또래 집단, 대중 매체가 이들의 삶에 중요한 터전이 된다. 그동안 가정에서 일어났던 권력의 구도가 외부로 표출돼, 더 이상 가정 안에서 권위가 세워지기 어렵게 된 것이다. 

대신에 친구 관계나 사회적 공동체 안에서 만들어지는 규범이나 규칙에 대해 권위가 부여된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가정 밖에서 자신의 역할이나 정체성을 찾고자 하며, 독립에 대한 뚜렷한 의지를 비롯해 자신의 가치, 관계를 통한 유대 등이 강하게 나타난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 등에 민감해지면서 이것이 신앙 형성에 기초가 된다. 즉, 신앙 역시 자기가 속한 집단에 의존하기 때문에 자기 반성이나 고민 없이 신앙을 수용하게 되는 단계다. 

하지만 4단계는 완전히 다른 신앙의 모습을 요구한다. 이 시기는 자주적인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자신의 관점에서 신앙에 대한 깊은 묵상과 반성,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런데 많은 십대가 이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신앙이 잘 자라지 못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 이뤄지는 신앙 교육이 일방적인 지식 전달과 전통적인 주입식 교육에 그쳐, 십대에게 고민하고 사유해야 할 기회를 주지 못한 것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개개인의 고민과 갈등을 충분히 나누지 못한 십대가 신앙 성장을 멈춰 버리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아빠, 엄마의 신앙 단절 현상을 단순하게만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파울러의 신앙 발달 단계로 신앙의 단절 현상을 살펴보는 것도 분명 의미는 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하여!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참조 눅 2:46~47)

성경에는 예수님의 십대 시절이 많이 기록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복음 2장에서 십대 예수님의 신앙에 대해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십대 예수님은 당시 성전 주변에서 말씀을 가르치던 선생들과 자유롭게 토론을 하고 계셨다. 이 모습에서 십대와 어른에게 필요한 신앙 교육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과거 주입식 교육에서 한 단계 올라가야만 한다. 신앙 공동체에서 마음껏 질문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 말씀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고민하고 소통하는 시간을 통해 믿음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 가야 한다. 그러면 정체됐던 믿음의 성장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제는 “왜 우리 부모님의 신앙이 멈췄을까?”에서 “어떻게 하면 나와 부모님의 신앙이 함께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을까?”란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