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금동훈 목사 (사랑의교회)
심각한 오해의 시작
갑자기 언행이 과격해진 십대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고 집을 뛰쳐나갔다. 다급한 아빠가 찾아와서 말한다. “목사님, 딸에게 문제가 있는데 큰 문제는 아니에요.”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빠는 자녀 앞에서 분명 강한 척하면서 말했을 텐데, 다른 사람 앞에서는 문제 행동을 보인 자녀의 편을 들고 있다.
“아빠가 제 말을 인정해 주지 않아서 순간 화가 났어요. 근데 아빠는 괜찮아요? 제가 좀 심했던 것 같은데…”
집을 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십대는 한참 동안 자신이 당한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빠를 향한 미안함을 토로한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당황해하며, 마음 상했을 아빠를 걱정하고 있다.
이런 아빠와 십대의 모습에서 분명한 것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일까? 서로 사랑하고 있지만 내면의 깊은 대화가 부재한 관계는 안타깝게도 오해를 만들어 낸다. 사랑으로 세워진 가족의 오해는 항상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적절한 소통 방법이 필요하다
발달 심리학자 갈린스키는 자녀의 성장에 따른 부모의 발달 단계를 6단계로 정리했다. 그중 5단계 ‘상호 의존 시기’는 자녀의 십대 시기다. 갈린스키는 이 시기에 부모는 행동과 마음이 격변하는 자녀를 이해하지 못해, 자녀와의 관계에서 충격과 위기를 경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발달 단계를 겪고 있는 십대를 이해하기 위한 부모 교육이나 정보, 모임은 전무하다. 특히 부모가 어떤 모습으로 자녀와 더불어 자라 가야 하는지를 성경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부모는 십대의 말투나 자세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보다 자녀와의 대화, 특별히 자녀의 말에 적절히 반응하는 경청과 ‘아이 메시지(I-massge)’ 소통을 해야 한다. 이런 방법을 통해 자녀와 대화하고 깊이 있게 소통할 때, 비로소 진정한 내면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가능해진다.
아담과 대화하시는 하나님처럼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4:24)
압살롬은 이복형 암논을 죽였다. 그리고 3년 동안 아버지 다윗을 피해 숨어 있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왕인 아버지와 왕자인 아들의 화해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데면데면하게 다시 2년이 흘렀고, 압살롬은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해 아버지에게 칼을 뽑았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다윗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죽은 아들 압살롬에 대한 사랑을 언급하고 있다. 아니 사무치게 외치고 있다. 다윗이 이처럼 아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압살롬이 알았더라면, 엄청난 반역을 저질렀을까? 도대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으로 내몰린 것일까?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서의 모습은 있었으나 자녀와의 관계에서 성숙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많은 국가를 굴복시키고, 조공을 받았던 위대한 나라의 왕이면서 동시에 가정에서 가족에게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며 가족애가 넘치는 모습으로 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 2:19).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과 함께하셨다. 에덴동산에서 각종 생물을 아담에게 인도하셨고, 아담은 그 이름을 지어 하나님께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대화하시며 우리의 모습이 누구에게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정체성과 삶의 목적을 알게 하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대화를 잃어버렸다. 특히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만드신 공동체 ‘가정’에서 대화와 소통이 끊어졌다. 그 단절의 틈은 스마트폰과 SNS로 메꿔졌다.
아빠들에게 고한다.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자녀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자.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 고민과 생각을 들어 주고 응원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