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주일학교 디렉터)
내 안에 헐크 있다
감정에 대한 유쾌한 상상이 빛나는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에는 사람의 머릿속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열일 하는 기쁨이(Joy), 슬픔이(Sadness), 버럭이(Anger), 까칠이(Disgust), 소심이(Fear)의 다섯 감정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사춘기 소녀 라일리는 이사와 전학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감정의 위기를 맞는다. 어린 시절 추억의 자리에 낯선 감정들이 대치하게 되면서 가족, 친구들과 관계는 뒤죽박죽이 된다.
이 영화는 말한다. 인간은 복잡한 감정의 상호작용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고, 청소년기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에 직면하는 시기라고 말이다. 라일리와 같은 십대들은 감정을 조절하는 것에 익숙지 않다.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청소년들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 때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다.
‘분노 조절 장애’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화가 나면 혈류가 증가하고 호르몬이 분비되면서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정상적인 판단과 행동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는 증세를 말한다. 성인 10명 중 1명은 분노 조절 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분노 조절 장애 환자의 연령별 통계를 보니 5위는 10대 여성, 4위 40대 남성, 3위 30대 남성, 2위 20대 남성이다. 그렇다면 대망의 1위는? 두둥~ 10대 남성이다! 여름에 덥다고 화내고, 겨울에 춥다고 화내고, 아침에 엄마가 일찍 깨웠다고 화내고, 지각하면 늦게 깨웠다고 화내고, 게임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화내고, 급식이 맛없다고 화내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는 우리의 모습.
화내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필요 이상으로 화내는 사람은 문제다. 그리고 정작 화를 내야 할 순간에 화내지 않는 사람은 더 큰 문제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뭐가 옳은지, 뭐가 그른지, 뭐가 잘못됐는지, 뭐가 죄인지 아무 느낌도 없다면 심각한 문제다.
Holy Anger
아테네의 위용은 명불허전이었다.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거리의 미술품들과 조각상들은 화려한 헬라 문화의 진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테네에 도착한 바울이 본 것은 다른 그 무엇이었다. 선교사 바울의 눈에 비친 아테네는 거대한 우상의 제단이었다. 헬라 제국 최고의 조각가들이 만든 우아하고 정교한 예술품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눈에 비친 아테네는 ‘지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오염된 도시였다.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행 17:16). 바울은 분노했다. 눈에 핏발이 서고, 혈관이 꿈틀거렸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할 영광과 찬송을 우상들에게 바치고 있는 세속 도시 아테네. 사도의 가슴 깊은 곳에서 우상들을 향한 맹렬한 분노와 그 땅의 영혼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폭발하는 화산의 용암처럼 솟구쳐 올라왔다. 그것은 거룩한 분노였다. 이 거룩한 분노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하나님께 대한 사랑,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다.
분노는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분노하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여주인공 덕선이가 정환이에게 말한다. “나 이번 주 소개팅한다. 소개팅할까?” 이때, 대한민국 여성들을 초토화시킨 정환이의 한마디! “하지 마! 소개팅.” 정환이는 덕선이에게 왜 화내면서 소개팅하지 말라고 했을까? 사랑하니까! 아이가 넘어져 다치면 엄마는 왜 화를 낼까? 사랑하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우상에 분노하는 것이다. 성경을 사랑하니까 세상 가치관에 분노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니까 죄에 분노하는 것이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사랑하기에, 하나님 백성답지 않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며 분노하고 탄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인 우리, 이 시대의 우상들을 향해 분노해 본 적이 있는가! 사소한 일에 필요 이상으로 짜증 내고 분노하는 ‘영적 분노 조절 장애’ 환자가 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정작 분노해야 할 순간에 분노하지 않는, 아니 분노하지 못하는 영적 사이코패스가 돼서는 더더욱 안된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뜨거운 심장으로 21세기 우상들에 격분할 수 있어야 한다.
현대의 물질만능주의와 상대방을 무차별 비방하는 SNS,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무한 이기주의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죄에 분노할 뿐만 아니라 내 내면의 죄에 분노하고, 영적 게으름에 분노하며, 말씀을 들어도 회개와 변화가 없는 것을 통한히 여기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이 분노는 거룩한 분노요, 하나님의 분노다.
깊어가는 가을, 우리의 감정 컨트롤 레벨이 좀 더 상승하기를! 그래서 우리 내면의 분노를 거룩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기를! 그것이 그리스도인 십대가 분노를 사용하는 방법이다.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