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2018년 06월

교회, 꿈을 꾸다

흥미진진 교회사 김경덕 목사 (사랑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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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change the world?
세계의 바다를 차지한 열강들은 바닷길을 통해 무역을 시작했다. 무역상들이 거래했던 물품 가운데 가장 이윤이 높고 거래가 왕성했던 품목은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흑인 무역이 붐을 일으켰다. 그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달랐다. 그런 세상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었다.




노예 무역상,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다
존 뉴턴은 1725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6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11살에 지중해 무역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바다로 나갔다. 당시 노예 무역선의 선장은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었다. 그는 그렇게 돈을 벌어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갑작스런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1748년, 뉴턴은 노예선 안에서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책을 읽던 중, 그는 마음에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고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됐다. 당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였던 조지 휫필드의 설교는 그에게 확신을 줬다. 그는 노예 무역상으로서의 삶을 끝내고,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목회자가 된 그는 45년간 사역했다. 또한 죄인이었던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찬송 가사를 지었는데, 대표적인 곡이 미국 민요에 그가 지은 노랫말을 붙여 탄생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이다. 이 곡은 지금까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찬송이다. 이러한 존 뉴턴의 삶은 한 젊은 정치인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바꾼 그리스도인 정치가
21살에 영국 하원 의원에 당선된 이 젊은 정치가의 이름은 윌리엄 윌버포스. 존 뉴턴은 윌버포스의 영적 스승으로서 불의한 정치 제도를 기독교 정신으로 개혁할 것을 독려했다.
18세기 영국 산업의 중요한 바탕은 노예 무역이었다. 합법적으로 노예를 사고팔던 그때, 주인은 노예를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다. 흑인들의 비참한 모습을 본 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이 젊은 그리스도인 정치가는 노예 제도 폐지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그의 꿈은 수백 명의 의원들에게 비웃음을 샀다. 영국의 귀족들도, 노예 상인들도 코웃음을 쳤다. 승산이 없는 외로운 싸움이었다. 그러나 윌버포스가 가진 기독교 신앙의 양심은 악한 세상에 물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1789년, 그는 노예 무역 폐지 법안을 처음으로 제출했고, 이후 20년간 그의 눈물겨운 싸움은 계속됐다. 그리고 마침내, 1807년 영국 의회는 노예 무역을 폐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1833년 영국 전역에서 노예 제도가 폐지됐고, 이것은 전 세계 노예 제도 폐지로 이어졌다. 정치가로서의 성공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을 더 원했던 그는 멋진 그리스도인이었다.



노예 해방을 실현한 대통령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인간이 다른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권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노예 제도를 반대한 이 외침은 시골 출신의 변호사요 무명의 정치인이었던 링컨을 주목받는 인물로 바꾸는 계기가 됐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켄터키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성경을 읽어 주는 지혜로운 신앙의 여인이었다.
1861년, 링컨이 미국 16대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미국은 남북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노예 제도를 반대해 온 링컨은, 노예 해방을 찬성하는 북군의 편에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남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863년 1월 1일, 링컨은 ‘노예 해방 선언’에 서명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내 평생 이 선언서에 서명하는 것보다 더 옳은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불과 2년 후인 1865년 4월 14일, 그는 워싱턴의 포드 극장에서 반대자에게 피격돼 세상을 떠난다. 성경적인 신념으로 가득 찬 지도자는 그렇게 삶을 마감했고, 사람들은 워싱턴에 링컨 기념관을 세워 그를 기념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그 기념관 앞에 한 흑인이 서게 된다.


자유를 꿈꾼 비폭력의 영웅
마틴 루터 킹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사가 된 그는 1954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교회에 부임하게 된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의 인종 차별은 여전했다. 버스에서 흑인은 백인 곁에 앉지 못했고, 버스의 자리 10개는 백인을 위해 비워 둬야 했다.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이런 차별에 맞서 버스 거부 운동을 시작한다. 무려 381일 동안 출근이나 등교를 할 때 버스를 타지 않았다. 이 놀라운 비폭력 저항은 인종 분리법을 폐지시켰고,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승리로 이끈 킹 목사는 지도자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 흑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워싱턴 대행진을 위해 25만 명이 모였다. 이 역사적인 순간에 킹 목사는 연설을 맡게 된다. “100년 전 오늘, 한 위대한 미국인이 노예 해방 선언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흑인은 차별 정책에 매여 있습니다.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노예의 아들과 노예 소유주의 아들들이 형제애 넘치는 밥상에 함께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은 이 연설은 행진 참가자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고, 온 인류의 마음에 자유와 평등에 대한 꿈을 심어 줬다.
그는 1964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나, 4년 뒤 백인주의자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아 39세의 이른 나이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는 더 뛰어나거나 더 열등한 인종이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다. 그것은 정치적인 견해나 인권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신앙인으로서의 가치관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시대를 바꾼 그는 이 시대의 선지자였다.


교회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뉴턴, 윌버포스, 링컨, 킹.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꿈꿨던 그들은 성경의 가치를 믿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원한 순수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누구나 꿈을 꾼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더 나은 인생을 살고 더 많은 행복을 누리는 꿈을 꾼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다른 꿈을 꾼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2000년의 교회 역사는 하나님의 꿈을 품은 공동체가 걸어온 발자취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가득하게 되는 것을 꿈꾼다. 그렇게, 교회는 오늘도 꿈을 꾼다.Q



참고 자료: 존 뉴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케빈 벨몬트, 『윌리엄 윌버포스, 세상을 바꾼 그리스도인』
마틴 루터 킹,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