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교회사 이승찬 목사(상하이한인연합교회)
사랑하는 <큐틴> 친구들! 로마에 전파된 기독교가 많은 박해를 받았다고 지난번에 배운 것을 기억하나요? 그런데 드디어 300여 년에 걸친 박해가 멈췄어요. 그 중심에는 ‘콘스탄티누스’라는 황제(재위 306~337년)가 있었죠. 이번에는 콘스탄티누스를 중심으로, 핍박받던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에서 중요한 종교가 돼 가는지를 살펴볼게요.
밀라노 칙령,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다
콘스탄티누스 당시에는 동로마에 2명, 서로마에 2명으로 총 4명의 황제가 로마를 나눠 다스리고 있었어요. 서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되고 싶었던 콘스탄티누스는 경쟁자인 막센티우스와 전쟁을 일으켰어요.
콘스탄티누스는 전쟁 전날 밤 꿈속에서 X와 P가 겹쳐진 표식을 보았다고 해요. 이 표식은 ‘그리스도’(Χριστός)를 의미하는 그리스 문자의 앞 두 글자를 겹쳐 놓은 것으로 ‘라바룸’이라고 불러요. 콘스탄티누스는 잠에서 깨어 즉시 모든 병사의 방패에 이 라바룸을 새기게 했고,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했어요. 이 꿈 이야기가 실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중요한 점은 이제 그리스도가 핍박이 아닌 승리의 상징이 됐다는 거죠.
서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의 여러 가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동로마 황제 리키니우스를 만났어요. 이때 두 황제는 로마에서 모든 종교를 자유롭게 믿어도 된다는 내용을 결정하고, 이를 황제의 명령으로 발표했어요. 이것을 ‘밀라노 칙령’이라고 해요(313년). 밀라노 칙령은 모든 종교에 자유를 허락한다는 내용이었지만, 핵심은 그동안 억압했던 기독교를 회복시킨다는 것이었어요.
이것을 통해 교회는 빼앗겼던 재산을 되찾고, 자유롭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게 됐죠. 그리고 예배를 드리며 헌금하고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이 늘면서, 교회는 점차 부유해졌어요.
니케아 공의회, 교회의 분열을 막다
이후 콘스탄티누스는 동로마의 리키니우스 황제까지 몰아내고, 로마의 유일한 황제가 됐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죠.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가 로마 제국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여러 가지 의견 충돌이 일어나면서 교회가 분열될 위기에 처한 거예요. 예를 들면, 기독교가 박해받던 시절에 교회를 배신했던 사람들을 다시 교회로 받아 줄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의견이 나눠졌어요.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님이 동일한 분이신지에 대해서도 서로의 의견이 충돌했죠.
콘스탄티누스는 이런 상황이 당혹스러웠어요. 더 이상 교회의 분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콘스탄티누스는 교회의 지도자들을 니케아라는 도시로 불러 모아서 논쟁을 매듭짓는 회의를 열었어요. 이것을 ‘니케아 공의회’라고 해요(325년). 그 결과 하나님과 예수님은 동일한 분이시라는 ‘니케아 신경’이 발표됐죠.
엇갈린 평가
콘스탄티누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려요. 어떤 사람들은 콘스탄티누스를 가리켜 박해받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물이라고 말해요. 콘스탄티누스로 인해 드디어 기독교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는 뜻이죠. 한편,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단지 정치적으로 이용만 했을 뿐이며, 콘스탄티누스로 인해 교회가 부유해지면서 교회의 타락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친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각자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든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럼 다음 호에서 더 흥미진진한 교회사 이야기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