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국제제자훈련원 원장 오정현
요즘 마음의 눈길이 가는 찬양이 있다. <행복>이라는 찬양이다. 가사의 내용은 이렇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 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에 행복이라오… 비록 짧은 작은 삶 주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에 행복이라오.”
이 노래를 사랑의교회 “토요비전새벽예배”(이하 토비새)에서 성도들과 함께 부르다가 3절 가사를 만들었다. “믿음의 눈 가지고 소망하는 우리 꿈. 2033-50의 비전 품고 걷는 삶. 주신 사명 붙들고 달려가는 우리 삶. 이것이 나의 행복이라오.”
나는 토요일 아침에 할아버지로부터 증손주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4대가 함께하는 “토비새”를 기회가 닿는 대로 강조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토비새를 통해서 보다 큰 믿음의 용량을 가질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다. 토비새는 신앙의 일가를 이룬 분들을 모시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각 영역에서 그들의 삶을 이끌었는지 들으며 도전을 받는 은혜의 자리다.
또한 토비새는 담임목사의 목회철학을 날것으로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주일예배 때는 여건상 나눌 수 없는 목회적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고 공감하며, 서로의 마음을 깊이 엮고 기도하는 시간이다.
내가 “토비새”에 이토록 마음을 쏟는 이유가 무엇인가? 목회자의 심중에 언제나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보다 기쁨을 가지고 힘 있게 사는 길은 없을까?’ 나는 토비새에 성도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다고 굳게 믿는다.
할아버지부터 손주에 이르기까지 4대가 신앙으로 같은 시간과 장소에 모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런데 토비새는 공적으로 이런 자리를 제공한다. 얼마든지 할아버지가 손주의 손을 잡고 나올 수 있는 곳이 토비새다.
요즘 세대 차이로 고민을 많이 한다. 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할아버지가 손주와 소통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런데 토비새는 세대 차이 없이 진행한다. 함께 성경 구절을 암송하며 말씀을 나눌 때, 심중에 심어진 말씀이 서로를 생명의 줄처럼 묶어 줄 것이며, 말씀에 강처럼 흐르는 은혜와 능력이 서로의 마음을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하나 되게 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가 토비새의 신앙으로 자란다면, 장차 삶의 갈림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고 결정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인생길이 어려워도 먼저 하나님께 엎드리는 신앙 본능을 갖게 할 것이다. 그렇기에 토비새에 오는 것이 행복인 것이다.
토요일 아침에 말씀으로, 기도로 은혜의 단장을 하는 사람이 주일을 맞이할 때 갖는 영적인 설렘은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다. 같은 말씀을 들어도 심중에 더 깊이 살아 있는 말씀으로 새겨져, 이것이 한 주 동안 살아갈 활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토비새의 부흥은 성도가 살고 교회가 살고 목회자가 사는 길이요, 성도를 참된 행복으로 이끄는 원천이다. 그러니 “토비새 오면 행복이라오”라는 가사는 구호가 아니라 실체요, 축복이다. 3절의 후렴이다.
“토비새 오면 행복이라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나님 선물. 토비새 오면 행복이라오. 칠천 기도 용사와 기도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