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2016년 01월

선교사편지 * “나는 사명 받은 제자(missional disciple)입니다”

전도행전 김대순 선교사_ 태국 OMF, 챙마이 신학대학원

‘선교사 편지’는 해외에서 ‘한 사람 철학’을 붙들고 제자훈련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선교사의 삶과 사역에 담긴 은혜를 1년 동안 나누는 코너다. 태국 OMF 선교사로 섬기며, 챙마이신학대학원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김대순 선교사가 자신의 선교 인생을 풀어놓는다.


 

 


매년 1월은 달력의 첫 번째 장이며 동시에 내게는 특별한 달이다. 18년 전 1월 18일에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가슴을 품고 타 문화 장기 선교사로 집을 떠나 비행기에 오른 날이기 때문이다. 파송 교회 담임목사님과 교인들은 파송예배 때, “우리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같은 김대순, 성숙 선교사를 선교지로 파송합니다. 참 자랑스럽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나는 교회와 성도들 앞에서 “저희는 선교지에 뼈를 묻겠습니다. 기도 부탁드립니다”라며 선교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선교사로서의 첫걸음을 디뎠다.

 

불신 가정에서 선교사가 되다
나는 경상북도 작은 산골짜기, 전통적으로 불교과 미신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할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 다녔던 기억이 난다. 10살 때까지 예수님과 복음에 대해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이 없었다. 청소년 시절,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물론 이민을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 가족도 아메리칸드림을 성취하기 위해 갔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계획과 달랐다.
미국에 도착한 나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목표가 달라졌다. 한국은 내 육적 고향이고, 미국은 내 영적 고향이 됐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주님의 제자로 성장해 가던 중, 1985년에 여름 방학 동안 ‘미션 퍼스펙티브’ 과정을 캠퍼스 단체와 6주간 공부하면서 선교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제자훈련의 최고 꽃봉오리는 ‘선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단기선교를 10번 이상 참석하고 인도하면서 선교 비전의 용량을 넓혔다. 나는 대학에서 생화학을 전공한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남가주사랑의교회 개척에 동참했다. 그리고 10년 동안 교회를 섬긴 후 선교사로 파송받았다. 

 

나는 누구인가?
파송예배 때 우리 부부를 끔찍이 사랑해 주신 여 전도사님께서 우리 손에 카드 한 장을 쥐어 주셨다. 카드에 적힌 내용은 “목사님, 인기 있는 선교사보다 인격 있는 선교사가 되세요. 유명한 선교사보다 유익한 선교사가 되세요. 일등 선교사보다 일품 선교사가 되세요”였다.
나는 매년 1월이 되면 그 내용을 다시 묵상한다. 비행기를 타고 선교지로 가는 날까지 선교사의 정체성을 선교와 관련해서만 이해했다. 선교사가 됐기에 선교를 한다고 오해했다. 나는 선교지에 가서야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한번은 현재 섬기고 있는 신학교에서 강의 시간에 신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나는 한국에서 15년, 미국에서 18년, 그리고 태국에서 17년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 사람, 미국 사람, 태국 사람?” 학생들이 웅성웅성 대면서 웃기 시작했다. 조금 후 나는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태국 사람?”
모든 사람은 국적에 따라 자신의 정체를 확인한다. 물론 나는 한국인이며, 미국인이며, 태국인일 수도 있다. 종종 나는 태국 사람들에게 ‘나도 태국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호감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한다.
“나의 온전한 정체는 주님을 평생 따라가는 제자입니다. 사명 받은 나그네입니다(missional sojourner). 36년 전 육적 부모님의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 갔습니다. 18년 전 예수님의 손을 잡고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 선교를 위해서 이민 왔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이민 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이 땅은 나의 집이 아닙니다.”

 

영성을 갖춘 선교사 되기
동양의 문화는 직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직책에 걸맞은 인격의 사람이 되는 것은 소홀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선교사로 파송받고 선교지로 떠날 때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처럼 자신만만(?)했지만, 실제로 선교지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현지 사람도, 나의 사랑하는 아내도 자녀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사역과 일을 좋아하는 내게 선교지에서의 처음 1~2년은 보통 힘든 시간이 아니었다. 일주일에 60~70시간 동안 사역하다 그 모든 것을 놓고 선교지로 갔을 때, 나는 내 정체성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없던 나는 선교지에서 인생의 속도를 늦춰 가면서 삶을 돌아보고 정리하게 됐다.
나는 가르치고 지도하는 모습이 아닌 선교지에서 이민생활하며 하나씩 배워 가는 어린이 같은 내 모습이 참모습이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사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숙한 인격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주어진 사역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다.
나는 지난 18년 동안 사역하면서 선교사는 선교 사역 자체보다 ‘어떤 선교사가 되느냐’ 하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맞는 영성을 갖추는 것이다. 선교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선교지에서 사역에는 열심이지만, 미성숙의 탈을 벗지 못하고 화석화되는 것이다.
내가 선교사로서 나 자신에게 매일 던지는 질문이 있다. ‘선교지에 도착할 때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고, 더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더 능력 있는 사역의 열매를 주님께 드리고, 더 인간관계를 잘하며, 더 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더 열정적이며, 더 비전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더 팀 사역을 하며, 더 남을 세우는 멘토링을 하는가?’ 나는 오늘도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 몸부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