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2016년 04월

선교사 편지 * “현지인은 흥하고 선교사는 쇠해야 한다고 전해라”

전도행전 김대순 선교사_ 태국 OMF, 챙마이 신학대학원

나는 제자훈련 사역을 통해 제대로 세워진 신학생 한 명을 통해 적어도 한 교회가 세워질 것을 꿈꾼다. 선교지에서 교회 개척을 할 때마다 신학생들을 멘토링 했다. 그들을 교회 목자로 세우기 위해서다. 전도를 통해 새로운 신자들이 탄생하면 세례훈련을 하는데 불교문화에 폭삭 젖은 상황 때문에 일반적으로 9개월에서 1년 기간의 세례반 과정을 통과한 후 세례식을 진행한다.
교회 개척 후 첫 번째 세례식을 진행하는데 현지 사역자가 내게 “선교사님이 세례를 주세요. 우리는 한 번도 세례식을 인도한 적이 없습니다”라며 부탁을 했다. 목사에게 성스러운 세례를 집례하는 것은 특별한 영광이다. 그러나 나는 현지 사역자에게 말했다. “세례는 현지 사역자가 진행해야죠. 물론 제가 경력도 많고 당신을 가르친 교수지만, 세례 집례를 당신에게 기쁨으로 양보합니다. 선교사로서 저는 세례 집례를 하지 않습니다. 단지 지금이 처음이니 어떻게 세례 집례를 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멘토링 하겠습니다.” 나는 현지인은 흥하고 선교사는 쇠해야 한다는 선교 철학과 영적 고집 때문에 지난 18년 동안 선교지에서 세례 집례를 한 번도 인도하지 않았다.

현지 사역자에게 세례를 양보하라
천국에서 이 땅에 선교사로 오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세례를 양보하셨다(요 4:1~2). 예수님께는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실 권리가 있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제자훈련 과정으로서, 그들에게 세례 집례를 양보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도록 격려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시고, 이 땅에 남은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어야 했다. 선교 전략에 최고 전문가이신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베푸는 영광, 기쁨, 축복, 특권 그리고 기대를 기꺼이 제자들에게 양보하셨다.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고 영혼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했더라도 세례는 현지 사역자에게 양보해야 한다. 현지 사역자의 세례 집례 인도가 서툴면 체계적으로 멘토링을 해 주면 된다.
나는 선교사 초기에 후원 교회들과 후원자들에게 선교 편지를 통해 양해를 구했다. “제 편지에는 저희가 선교지에서 세례를 베풀었다는 글은 없을 것입니다. 저는 선교지에서 세례를 주지 않습니다. 그 일은 현지 사역자에게 양보할 것입니다.” 현지인들이 자기 동족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현지인들을 세워 주는 것이 성숙한 제자훈련 선교다.

현지 사역자가 주연이다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이 주연(主演) 역할을 하는 게 당연한데, 선교지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지인들은 외국 선교단체나 선교사에게 재정적 도움을 받기에 선교사들의 눈치를 보며 조연(助演) 역할을 하기 일쑤다. 내가 사역하는 선교지도 예외가 아니다. 나는 신학교 강의실에게 종종 이렇게 소리 높여 강조한다.
“선교사에게 이용당하지 말고 선교사들을 좋은 의미에서 잘 이용하세요. 당신들이 주인이고 선교사는 손님입니다. 선교사 눈치 보지 말고, 하나님 눈치 보세요.”
현지인들을 제자훈련 해 세우는 것은 우선순위에 없고, 개인의 선교 비전과 선교단체 프로젝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현지인들을 이용하는 선교는 역기능 선교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은 ‘담임’이라는 단어에 거룩한 욕심이 있다. 목회를 하든지 선교를 하든지 한번쯤은 ‘담임’ 역할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선교사의 역할은 주연인 현지인이 성공하도록 돕는 2인자 조연이라는 것을 철저히 배웠다. 이는 ‘둘째 줄 리더십’ 혹은 ‘뒷좌석 리더십’이라 할 수 있다. 다윗 뒤에는 요나단, 여호수아 뒤에는 갈렙, 바울 뒤에는 바나바가 있었다. 선교사의 역할은 현지인을 훈련시켜 선교사보다 더 탁월한 영적 일꾼이 되도록 세우는 것이다. 선교 사역의 평가는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났을 때 명백히 드러난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사자성어를 선교에 접목하면 ‘스승보다 더 탁월한 제자를 세우는 선교’라고 할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이 선교사보다 더 탁월해지도록 세우는 것이다. 고기 주는 선교 사역보다, 스스로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제자훈련 해 일꾼을 세우는 것이 선교다. 세상의 흐름에서 볼 때, 조연은 주연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나 선교와 목회 같은 영적 세계에서는 선교사들이 조연과도 같은 현지인들이 그 땅에서 진정한 주연이 되도록 인도한다.

선교사는 세례 요한의 역할을 감당하라
현지 사역자들을 위한 선교사 모델은 세례 요한이다. 우리는 제자훈련 하는 21세기 선교사의 역할을 세례 요한에게 배울 수 있다. 현지인들이 성공하도록 멘토링 하고,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세우는 것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는 주연이 아니다. 어떤 선교사는 “선교사는 절대로 교회 개척을 단독으로 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교회를 개척하면 보통은 담임목사 직분과 역할을 독점하게 되곤 하는데 그것은 옳지 않다.
나는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찍은 기념사진을 보면 왠지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다. 선교사가 현지인을 주님께 인도했을지라도 현지 사역자들에게 세례 집례를 양보하며, 그들이 앞으로도 많은 영혼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이 선교사 역할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철저히 행했다. 이처럼 선교사는 쇠해야 하고, 현지인들은 흥해야 한다. 결국 선교사들은 선교지를 떠날 자들이 아닌가? 항상 선교지에서 철수(Phase Out)할 준비를 하고, 선교 사역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18년 전 선교지로 파송을 받았을 때 파송 교회 성도들 앞에서 선교지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선교지에 뼈를 묻을 정도의 각오와 헌신은 필요하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버티고 있으면 예수님의 사역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선교사가 선교지에 뼈를 묻는 것이 오히려 선교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오래된 흙탕물이 빠지지 않으면 새로운 물이 활기를 펼 수 없다. 헌 부대에 새 포도주를 부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지 사역자들과 후배 선교사들을 위해 속히 적절한 자리와 장을 내어 주고, 그들이 성공하도록 제자훈련 하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다.
선교사가 터줏대감처럼 선교지에 버티고 있으면 선교지 날씨는 흐릴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내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선교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섬기는 자의 기본자세를 갖췄는지 점검해 본다. 목회도 동일하다. 제자훈련 하는 선교와 목회는 나 혼자 열심히 뛰고 끝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