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2003년 12월

한 번 더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도행전 디사이플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나는 이제 언니가 둘이 아니고 하나다. 가끔 누군가 형제가 몇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망설일 때가 있다. 이제는 말해도 될 텐데…. 언니는 복음을 모르고 죽었다. 언니로 인해 우리 가족은 경제적으로 심한 타격을 받았지만 결국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죄가 깊으면 은혜가 깊다고 하였던가! 나는 오늘 언니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너무 가슴이 아프다. 사람은 언제 죽고 싶어지는 걸까? 정말 모든 것을 부인하고 아무 소망이 없을 때는 언제일까? 어느 정도로 좌절하면 자식과 남편을 두고 죽고 싶을까? 그리고 죽을까?
언니가 그야말로 죽음을 넘나들 정도로 우울증이 심했을 때, 나는 예수님을 믿고 한참 교회 일에 바빴다. 나는 교회 일에는 열심이었지만, 언니에게는 그저 필요할 때 서로 얼굴 보는 사이였다. 나는 언니에게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언니가 돈 문제로 속 썩이고 제대로 살지 못한다고 비난만 했었다. 만약 내가 그때 언니에게 진정으로 위로자가 되었다면 언니는 그 절망에서 한 줄기 빛을 보듯이 헤어나오지 않았을까? 나는 과연 무엇을 했나?
혈육이라는 것이 무서운 것은, 시간이 갈수록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미운 감정은 모두 없어지고 보고 싶은 생각만 드는 것이다. 남편은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위로하지만 그것 역시 언니에 대한 죄책감만 더하게 한다. 더욱 끔찍한 것은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제자훈련을 받는다 해도 만약 그때와 같은 상황에 다시 처한다면 달라질까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그럴 것 같지 않다. 나는 또 다시 내 가정과 내 생활을 위해 언니를 외면하지 않을까? 나에 대한 절망이다. 너무 변하지 않는 나의 속 사람의 모습을 주님은 아실 것이다. 주님이 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주님은 우리에게 한 번의 기회뿐 아니라 수많은 기회를 주십니다. 그가 언니의 모습이 아닐 뿐, 또 다른 언니가 우리 주위를 왔다가 가며, 또 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으로 사랑합시다. 그가 바로 집사님의 언니입니다. 과거의 상처가 아픔이겠지만, 저는 단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으로 그 부담을 이겨내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또 다시 주어지는 기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연주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