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2011년 07월

시드니 전 부총영사 채홍호 집사

전도행전 우은진 기자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일꾼’이 되겠습니다”
_시드니 전 부총영사 채홍호 집사

‘나와 내 가정’을 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 행정안전부 소속 채홍호 집사(시드니 전 부총영사). 그가 호주 시드니 실로암교회(담임: 류명재 목사)에서 2년간 강한 주님의 군사로 제자훈련받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새로운 비전과 기독교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고 있다.
선한 인상의 점잖은 모습은 전형적 공무원의 빛깔이었으나, 시드니에서 주님과 함께했던 2년간의 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마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용사와 같았다. 뜨거워지기 전 여름 햇살이 내비치는 광화문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시드니에서 어떤 일이 그에게 일어났는지 직접 들어보았다.

바쁜 공무원 생활, 가정과 교회는 뒷전
어려웠던 집안 살림으로 그는 구미전자공고에 진학했다. 구미전자공고는 전교생이 전액 장학생으로 다니는 특수학교였다. 그러나 졸업 후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재수 후 서울시립대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군대 시절 카투사에 들어가 번역병이 되어 오산부대에서 근무하게 된 그는 외국인을 접하며 영어실력을 쌓았다.
복학 후 졸업하던 해인 1989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내무부에 발령받아 경북도청에서 5년간 근무하고, 다시 내무부에서 일했다. 20년 넘게 행정의 전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경북도청 정책 기획계장을 맡아 당시 ‘할리우드 계획’을 세워 문경, 안동 등에 영화세트장을 많이 만들기도 했다.
캠퍼스 커플이었던 아내 신명숙 집사 역시 전북 부안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들어온 늦둥이 대학생이었다. 직장일로 바쁜 남편과의 갈등 그리고 세 아이의 교육문제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던 그의 아내가 붙잡은 것은 교회였다.
1997년 서울로 발령받아 일산으로 이사 오고, 일산 벧엘교회에 출석하면서 아내는 먼저 성경공부와 온갖 좋은 교육 프로그램에 모두 참석했다. 아내는 점점 영적으로 회복되었고, 영재 교육에 미쳐있었던 자신을 내려놓고, 이러저런 기독교 교육 프로그램을 받으며 아이들의 교육관도 기독교적으로 변화되었다.
그는 아내의 권유로 가정의 평화를 위해 1998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하면 아이들의 교육에 안정감을 줘서 좋다는 것과 주일성수를 하면 테니스 치는 것을 허락하겠다는 아내의 설득이 주요했다.
그러나 교회에는 몸만 왔다 갔다 했다. 주일예배만 마치면 곧바로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러 갔고, 밤늦게까지 지인들과 술 먹고 집에 늦게 들어오기 일쑤였다. 이런 시절 가운데에서도 아내 신명숙 집사는 새벽예배, 철야예배를 드리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미국 유학, 백인 교회 다니며 교회에 대한 생각 바꿔
그러던 2001년 한 부처에서 한두 명씩 뽑아 유학을 보내주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경쟁률도 치열하고, 늦은 나이에 영어 공부를 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던 일이라 그는 아내 몰래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힘들다는 갈급한 마음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마치 하나님이 합격하게 해주신 것같이 생각되었다. 이후 미국 콜로라도 덴버로 유학을 갔다. 그리고 백인 교회였던 필립스연합감리교회에 출석했다.
그런데 거기서 그는 기독교 공동체의 아름다운 섬김과 사랑을 경험했다. 영어가 낯선 그의 가족들을 위해 그 교회 담임목사가 아이 셋에게 각각 교인 세 명을 붙여주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일대일 가정교사였던 셈이다. 책도 읽어주고, 성경도 가르쳐주었다. 때론 자신들의 집에 아이들을 오라고 해서 잔디를 깎게 하고 용돈도 주었다.
그 역시도 성경을 개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토요일 오후에는 남성 모임에 참석하며 백인 남성들과 함께 콜로라도 산으로 등산도 다니고, 스키와 골프도 배웠다. 그는 그들에게서 감동을 많이 받았다.
그는 처음으로 교회가 딱딱하고 재미없는 곳이 아니라 마음을 오픈 할 정도로 따뜻한 사랑이 가득한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2002년 세례도 받았다. 그러나 체계적인 신앙교육을 받지는 않았기에 그의 신앙은 교회에 인간적인 정이 많이 쌓여 그저 이미지가 조금 바뀐 정도였다.
2003년 귀국 후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공보관실 공보과장을 맡아 행정자치부 보도자료를 만들고, 지방 균형발전에 관한 정책을 홍보하는 일을 했다. 당연히 업무 특성상 기자들을 상대하다 보니 귀가가 늦어졌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하기 힘들어졌다. 이후 2008년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기획재정 담당관을 지냈다. 이때부터는 아침 7시 30분이 출근 데드라인이 되었고, 퇴근은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어느 날은 옷만 갈아입으러 새벽에 집에 들렀다 다시 출근하는 날도 많았다. 광우병 촛불시위 등이 터져 더 늦게 귀가하는 날이 많았다. 아이들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고, 자녀교육은 아내에게 떠맡기다시피 했다.
대통령에게 업무보고, 대국회 관련 일, 장관 국회 답변 보좌, 행안부 예산업무를 총괄해야 하는 등 말 그대로 눈코 뜰 새 없는 업무의 연속이었다. 2008년 3월에 업무보고를 하고, 그해 12월에 2009년 업무보고를 하는 등 한해에 두 번의 업무보고를 하는 기록을 갖기도 했다. 그만큼 쉴 틈이 없었다.

시드니 실로암교회에서 제자·사역훈련 동시 받아
그는 행정안전부라는 한 부처에서 가장 중요한 기획, 예산책정, 국회 장관 보고서 총괄 등을 담당하며 관록을 쌓고 국장급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일한 일종의 포상의 개념으로 지방자치단체 국제화재단 사무소장이라는 이름으로 2009년 호주 시드니에 오게 되었다.
그런데 1년 만에 국가예산 절감차원에서 사무실이 폐쇄되고, 시드니 총영사관의 부총영사 직위로 일하게 되었다. 호주에는 12만 명의 교민들이 살았고, 그중 시드니에 10만 명이 살았다. 교민의 아픔을 보살피는 게 그의 주 업무였다.
시드니에 처음 도착하자 민박하고 있는 집 주인이 다니던 교회에 출석하게 됐는데, 그 교회가 바로 실로암장로교회였다. 한국에서는 바쁘다는 핑계와 대형 교회에 대한 거부감으로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게 솔직히 꺼려졌다.
이 교회는 호주 ACU대학 강당을 빌려 예배드렸는데, 교회에 대한 첫 인상이 마치 캠퍼스에 구경 온 것처럼 느낌이 아주 좋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소탈하고 친근한 외모의 류병재 목사의 설교에 완전히 필이 꽂힐 정도로 강한 인상을 받았다. 새신자반에서는 구원 등 신앙의 기본들을 철저하게 교육해 주었는데, 10년간 교회에 다녔어도 잘 몰랐던 부분들이었다. 훈련이 체계화된 교회에 온 덕분에 그의 마음이 많이 열리게 된 것이다. 또 교회에서 바나바를 연결해 주었는데, 같은 고향의 장로님을 소개해줘서 시드니 생활과 신앙생활 전반에 대해 잘 인도받게 되었다.
교회의 체계적인 양육과 교인들의 보살핌은 그에게 영적 갈증을 느끼게 해주었다. 빨리 채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래서 바쁜 업무 중에서도 수요예배와 주일예배는 물론, 특별한 세미나가 교회에서 열리면 무조건 참여했다. 은혜가 온몸으로 흡수되었고, 더 배우고 싶은 열망은 커져만 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1년밖에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2010년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동시에 받는 기염을 토했다. 사실 규정상 제자훈련을 마치고 사역훈련을 받아야 하는 게 정상인데, 곧 시드니 부총영사직을 마치고 떠나야 하기에 류병재 담임목사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여 승낙을 받아냈다.
제자훈련을 수료할 때까지 사역훈련은 청강생 자격으로 참여했다. 여기에는 사역훈련을 인도하는 류병재 목사에게 훈련받고 싶은 열망도 컸다. 두 부부가 독후감, 큐티, 교재 예습, 말씀암송 등 모든 것을 다 성실히 마쳤다. 일주일 중 화요일에는 제자훈련, 수요일은 수요예배, 목요일은 사역훈련, 금요일은 사랑방 참여, 주일성수 등 거의 5일을 교회에서 보냈다. 교통비도 만만찮았다. 직책상 일주일에 반 이상을 교회 출석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행히 시드니 총영사가 많은 양해를 해주어 저녁시간을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죄인의식, 전도열정, 부부관계 회복 등 얻어
호주에서의 2년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보너스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제자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해주시고, 좋은 교회와 목회자를 만나게 해주시고, 좋은 직장 동료와 교인들을 붙여주시는 등 만남의 축복도 이 기간 동안 넘치게 부어주셨다.
그의 제자반에는 10명 중 8명이 수료했는데, 특이한 점은 남녀 혼성반이었다는 점이다. 제자훈련 하는 교회 중 부부 제자반이 있기도 하지만, 이 교회는 이민 교회라는 특수성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많고, 훈련생 수급문제도 있어서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함께 한 제자반에 속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러나 연령이나 남녀 혼성반이라서 문제된 부분은 없었다. 오히려 이민 교회라는 점, 고국을 떠난 타국생활이라는 점이 오히려 제자반의 나눔과 오픈을 풍성하게 했다.
훈련 이후 변화된 점으로 그는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점, 그리고 구원받은 지금 어떻게 세상에 나가 예수의 제자로서 삶을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런 내적 변화로 인해 영혼 구원에도 남다른 열정을 품게 되었다. 과거에는 아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하면, 괜히 부담 주지 말라며 핀잔을 주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일부러 전도하는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며 주변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이끌게 되었다.
또 하나 변화된 점은 아내와 함께 2년 동안 훈련을 받다 보니 대화할 공통점도 생겼고, 부부가 시간도 자주 갖다보니 모든 게 하나로 맞춰져 가고 기도로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요즘 그의 아내는 남편 채 집사의 기도에 은혜 받는 날이 많다. 남편을 영적 제사장으로 세워달라고 오랜 시간 중보 기도한 결과이다. 요즘은 집 주변 교회로 매일 부부가 함께 새벽기도를 드리러 다닌다.
사실 그는 시드니로 발령받을 때 조카 딸과 친구 딸을 함께 데리고 갔었다. 미국 유학시절 받은 것을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집 딸들을 키우는 대신 아내에게는 가정예배 드릴 것을 약속하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 친구 딸이 시드니 실로암교회의 모든 공예배는 물론, 교회에서 진행하는 ‘신구약파노라마’와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다섯 가지 거짓말 세미나’ 등 모든 양육 프로그램을 다 들었을 정도로 특별한 은혜를 체험했다. 오히려 채 집사의 가정이 이 아이로 하여금 신앙적으로 도전을 받았을 정도다. 급기야 채 집사 가정은 아침에는 영어로 성경읽기, 저녁에는 가정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영어를 잃어버리지 않게 됨은 물론, 주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살게 된 것이다.

크리스천 직장인은 전문성과 성실함 길러야
그는 전과 달리 직장 안에서도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것을 공개하고, 언행이 다르지 않도록 항상 긴장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더 큰 일에 쓰임 받을지도 모른다. 그는 직업상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일꾼의 자리에 세워주신 주님께 감사드릴 뿐이다.
그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에게 필요한 인격으로 가장 먼저 ‘부지런해야 함’을 꼽았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게으르거나 일을 적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침 일찍 나와 기도로 하루의 문을 열고, 하루 업무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며, 저녁시간에 남들보다 좀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로는 크리스천 직장인들이 ‘전문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도만 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실력을 쌓으려고 노력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 자신도 자신의 업무에 대한 전문성을 계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고, 부족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 잠과 안락을 포기해야 했었다. 어느 때는 너무 힘들어 집에 오는 길에 마음에 와 닿는 찬송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부르기도 했었다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이 고통 받고 힘들어할 때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너희의 기도에 응답해주신다고 약속해주신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을 붙잡고 기도 중이다. 많은 가계대출과 높은 등록금, 실업율로 희망을 잃은 이 땅의 수많은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주님께 나아와 부르짖을 때 우리나라에 복 주실 것임을 믿으면서 말이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우은진 기자>


<담임목사의 추천 한마디>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은 준비된 일꾼”
_ 시드니실로암교회 류병재 목사

“채홍호 집사님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신 분입니다. 시드니에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실 때는 모든 기도제목이 이루어져서 저희 교회에 큰 간증이 되었던 분입니다.”
시드니 실로암교회 류병재 목사는 “그가 2009년 4월 시드니에 부임해 그 해 새가족반과 양육반을 수료하였다. 그런데 2011년 귀국 예정이라며 간곡한 요청을 해와 2010년 제자훈련과 사역훈련을 동시에 받도록 했다”며 “처음에는 원칙상 안 된다고, 또 감당하기도 어렵다고 만류했지만 워낙 본인의 의지가 강해 특별 케이스로 허락했다”고 그간의 사정을 소개했다.
두 부부가 모두 화요일 저녁 제자훈련, 수요일 저녁 수요예배, 목요일 사역훈련, 금요일 다락방 참석, 주일성수 등 바쁜 업무 중에서도 주 5일을 헌신했고, 더구나 집과 교회의 거리가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나 됐었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류 목사는 “채 집사님이 훈련 중일 때나 수료 이후 여러 사람들을 전도했고, 후임으로 오시는 분까지 교회에 인도했을 정도로 영혼구원에 대한 열정이 강해졌다”며 “앞으로 그의 삶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가 되며, 그의 행보가 다른 제자훈련 하는 교회에도 큰 격려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