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2016년 07월

선교사 편지 * 고난 뒤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전도행전 김대순 선교사_ 태국 OMF, 챙마이신학대학원

좌절의 계절을 지나다
여름 장마처럼 선교사도 좌절의 장마를 지날 때가 있다. 선교를 즐기고 선교사 된 것이 행복하다고 해서 선교사에게 좌절의 시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주님 이게 뭡니까? 모든 것을 헌신하고 제자훈련 선교를 위해 주님께 저를 드렸으면 적어도 우리 아들은 보호해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살게 해 달라고 했습니까? 유명하게 해 달라고 했습니까? 그냥 평범하게 주님을 성실히 섬기면 적어도 우리 가족의 안전은 책임져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냥 보고만 계실 건가요? 도와주세요.”
2005년 9월 18일 저녁 8시, 아들 동규(Joshua)를 수술실로 들여보낸 후 의자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북받치는 감정에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생떼를 부리며 항의했다. 시편 기자처럼 우리 부부의 마음은 한밤을 새운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았다(시 102:7).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고 싶었다.
이 사건은 아들 동규가 13살 때 금요일 가정교회 예배 진행 중에 갑자기 복부 고통을 호소하면서 일어났다. 가정교회는 내가 맡고, 아내가 동규를 급하게 병원 응급실로 데려갔다. 그날따라 모임에 불신자들이 많이 참석해서 모임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모임을 인도하며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너무나도 무거웠다.
챙마이의 람(Ram) 병원에 갔더니 맹장이라고 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즉각 수술을 했다. 그런데 담당 의사가 쉬운 수술이라 방심했는지 허술하게 수술한 것이다. 수술 후 집으로 와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담당 의사를 찾아갔지만, 일반 감기 증상이라며 가볍게 설명했다. 이상하게 담당 의사의 진단을 신뢰할 수 없어 급하게 다른 병원으로 갔더니 복막염이라는 것이었다.
아이의 창자가 가스로 가득 차서 올챙이배처럼 볼록 나와 있었다. 의사는 생명이 위험하다며 응급 수술을 제안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의사가 방콕에 있는 모임에 참석 중이어서 선택의 여지없이 경험이 적은 의사에게 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의사이며 선배 선교사로 태국에서 50년을 섬겼던 헨리 박사는 동규의 상태를 보고 “죽은 생명이나 다름없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지금도 간증한다.
6시간이라는 긴 수술 시간 동안 아이의 배를 25cm 정도 열어서 내장을 꺼내 씻어 다시 넣은 후 스테이플러로 찍어서 붙였다. 회복실에 돌아온 아들 동규를 본 우리 부부는 2시간 동안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펑펑 울기만 했다. 아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아픔을 호소할 때 하나님께서 느끼셨을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후 동규는 12일 동안 병원에서 회복의 시간을 보냈다. 아픔과 상처 때문에 동규는 몇 년 동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2007년 안식년 기간에 미국 공립학교를 다니던 자녀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다며 요청했는데, 우리 부부는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순종을 내세워 아이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선교지로 다시 돌아왔다. 그때 동규가 “아빠가 내 미래를 다 망쳤어”라고 하는 말에 우리는 잠시 우리가 내린 결정에 마음이 흔들렸다.
선교사들은 기회가 주어지면 미국에서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미국 시민으로서 교육 시스템이 엉망인 선교지로 돌아가 자녀들의 장래를 망치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21세기 장기 선교사 평균 선교 수명이 3~5년 정도인데, 우리는 이미 거의 19년 정도 했으니 그만 철수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의 수술을 통한 깨달음
2014년 8월에는 아내가 복부 고통을 호소해 새벽에 응급실로 가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마취에서 깨어날 때 약 45초 동안 심장소리가 불규칙해 주님 곁으로 갈 뻔했다. 진단한 결과는 ‘Long QT’ 곧 심장 유전병이었다. 주님께서 유머러스하게 우리에게 긴 큐티를 하도록 이런 병명을 주셨나 싶었다. 의사의 제안으로 심장 기계를 넣는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 전 아내는 우리 가족에게 시편 112편을 읽게 했다.
말씀을 읽는데 7절 말씀이 가슴을 덜컹하게 했다 “그는 흉한 소문(bad news)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7절). 이 구절을 읽으니 별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아내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우리를 준비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수술이 잘못돼도 주님을 의지하라는 말인가?’ 아내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동규(22세)와 한나(20세)에게 “언젠가 아빠, 엄마가 주님 곁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을 거야. 우리는 너희와 항상 함께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항상 함께하신단다”라고 말했다.
계속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는데 수술 2시간 만에 의사가 나와서 “미스터 김, 수술이 잘되지 않아서 심장 기계를 당신 아내 몸에 넣을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멀쩡했던 아내의 몸에는 8군데 큰 수술 자국이 생겼다. 언제 아내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작동해 생명이 위험해질지 모른다. 수술 실패 후 처음 2~3주 동안에는 새벽에 일어나 아내의 숨소리를 점검했다. 혹시 나를 두고 주님 곁으로 가면 어쩌나 싶었기 때문이다.
이런 죽음의 문턱에까지 가는 경험을 통해 우리 부부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동안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착하며 바쁘게 살아왔는데, 앞으로는 예수님처럼 가장 소중한 본질에 목숨을 걸어야겠다고 재차 다짐했다.


나의 본국인 천국을 소망하며
선교사가 돼 이삿짐을 여러 번 싸고 풀 때마다 진저리가 난다. 선교지에서 육신이 쉴 수 있는 집(house)을 렌트해 사용하지만 홈(home)이라 부를 수 있는 거처가 없는 우리의 마음은 구름과 같다. 방학이나 공휴일에 찾아올 수 있는 집이 없어 자녀들에게도 미안하다. “아빠 엄마, 언제 은퇴할 거야? 이제 본국에 와서 사역하면 안 돼?” 우리도 자녀들이 참 보고 싶다. 이 땅에서 영원한 집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곳은 없다. 주님께서 천국에 영원한 집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망 때문에 오늘도 두 발로 서 있는 장소에서 순종하고 있다.
온전한 제자는 이 땅에 절대로 소망을 두지 않고, 잠깐 머물다 떠나는 사명자의 삶을 살아간다. 선교사로서 외롭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바울의 격려를 되새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주님의 일에 더 충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