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행전 김대순 선교사_ 태국 OMF, 챙마이신학대학원
지난 4월 17일은 하나님의 손길이 미전도 종족인 ‘비수’ 민족에게 임한 특별한 날이었다. ‘비수’는 소수 민족으로 중국, 라오스, 미얀마, 태국에 약 10만 명 정도가 흩어져 살고 있다. 라오스에 약 4만 명 정도가 있으며, 태국에는 500명 정도가 불교와 미신을 믿으며 두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비수어 신약 번역·출판 감사예배에 참석했는데, 그날 날씨는 42도로 사우나 같았지만 마음은 한없이 시원했다. 예배 사회를 담당한 뽀오 자매는 태국에서 비수 민족 가운데 예수님을 믿은 첫 신자다. 그녀는 우리가 섬기는 챙마이신학대학원의 신학생이다. 감사예배 때 뽀오 자매가 비수 신약성경을 손에 높이 들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주님께 바치는 영광의 예배였다. 그토록 기다렸던 성경 문맹의 먹구름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수(手)가 이 민족에게 임하신 것이다.
사탄이 세상에서 사용하는 가장 치명적인 테러는 무엇인가? 글자 문맹과 성경 문맹(Biblical Illiteracy)이다. 사탄은 하나님과의 소통을 막는 것을 최우선순위로 삼고 치열하게 방해 작전을 펼친다. 인류 초창기에는 모두가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기에 소통의 벽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에 벽이 생겨났다. 이후 인간은 언어가 달라 폭넓게 소통할 수 없게 됐다.
선교는 소통이다.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관문은 현지 언어 습득이다. 현지 언어를 품위 있게 구사하지 못하면 선교는 난장판이 된다. 언어 수준이 서투르면 선교사는 통역자를 고용하거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게 돼 제자훈련이 불가능해진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제자훈련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30년 동안 이 땅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는 일에 집중하셨다. 과거 선교 단체들이 40세 이상 되면 타 문화 선교사로 허입을 고려한 이유는 새 언어 습득력 때문이다.
나는 19년 전에 태국에 도착해 처음 1년은 벙어리로 보냈다. 매 주일 태국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한마디도 못 알아들어 애를 먹었다. 태국 글자만 접해도 현기증이 왔다. 그래서 나는 귀납적 제자훈련을 거침없이 인도할 수 있는 언어 수준에 이르기까지 온 힘을 다해서 태국어를 배웠다.
한국 선교사는 서양 선교사에 비해 영어 수준이 뒤떨어지기에 현지 언어를 서양 선교사보다 2배 이상 탁월하게 구사할 수 있어야 현지인들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을 수 있다. 수준 있는 제자훈련을 인도하려면 6~8년 정도 현지 언어 공부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은 신학대학원에서 ‘조직신학’ 과목도 현지어로 가르칠 수준으로, 이렇게 이끌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린다. 물론 지금도 언어 습득의 핸들을 놓지 않고 있다.
현지 언어로 인한 에피소드
선교사로서 현지 언어를 배우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수두룩하다. 한국에 온 젊은 백인 여 선교사가 부산에서 한글을 배우는데 하루는 채소 단어들을 배웠다. 저녁 식사 준비에 감자가 필요해 재래시장에서 시장 아주머니에게 “감자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채소를 팔던 아주머니가 배꼽 잡고 웃는 것이었다. 선교사는 감자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입에서 떨어진 말은 ‘감자’가 아니라 ‘남자’였다.
나도 1년 반 동안 태국어를 배운 후 서툰 태국어로 첫 설교를 할 기회가 주어져 열심히 설교를 준비했다. 설교 서문을 질문으로 시작했다. “여러분은 주님의 꿈이 있습니까?” 교인들이 모두 깔깔 웃으면서 한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했다. 나는 속으로 ‘이 교회는 참 소망 있네!’라고 생각했다.
설교를 마친 후 교회 지도자 한 분이 내가 태국어 발음을 잘못했다고 말씀해 주셨다. 성조가 다섯 개인 태국어는 성조에 따라 단어의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꿈’의 성조를 잘못 발음해 ‘이빨’로 전달한 것이다. “여러분은 주님의 이빨이 있습니까?” 그제야 나는 성도들이 내 설교를 듣자마자 왜 웃었는지 깨닫고, 얼굴이 화끈해졌다.
선교의 두 수, 인수와 신수
선교의 결실은 신비한 두 가지 수에 좌우된다. ‘인간의 열심’인 인수(人手- Human factors)와 ‘하나님의 열심’인 신수(神手- God factors)다. 선교 성공의 승부수는 하나님의 섭리의 수다. 목회와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는 한국 교회사와 동양 교회사를 접하며, 각 나라의 선교 현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봤다. 왜 대한민국에는 짧은 시간 안에 기독교의 꽃이 활짝 폈지만, 태국은 기독교가 훨씬 일찍 전해졌음에도 그리스도인이 1%도 되지 않는가?
물론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 없듯 한국과 다른 나라의 상황을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지만, 냉철한 관찰을 통해 몇 가지 선교적 통찰력을 얻었다. 주님께서 모든 열방을 동일하게 사랑하시지만, 한국을 한 번 더 만져 주신다는 느낌이 든다. ‘한글’은 암흑의 한반도에 기독교 꽃이 활짝 피게 한 ‘하나님의 수’라 생각된다.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지구촌에는 ‘비수’ 민족처럼 성경이 없는 민족이 많다. 글자는 있지만 문맹률이 높은 민족에게 귀납적 제자훈련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한국 지폐 가운데 만 원 지폐를 제일 좋아하는 이유는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지한 백성을 문맹에서 출애굽 하게 하셨다. 세종대왕은 가장 낮은 신분의 사람들도 글을 읽을 수 있도록 한글을 과학적으로 쉽게 만드셨다.
대한민국은 문맹률이 아시아에서 가장 낮아 누구든지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조선 땅에 온 프랑스 해군 주베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조선과 같은 먼 극동의 나라에서 우리가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몹시 가난한 사람들의 집에도 책이 있다는 사실이다.” 글을 읽을 수 있기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 성경이 번역되고 성경공부 사경회가 가능해 한반도에 부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 모펫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 교회는 전통적인 부흥 사경회를 통해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 사경회를 통해 부흥했다고 한다.
매 주일 교회가 제자훈련을 받은 온 성도를 일터 선교지로 파송하는 목적은 성경 문맹 퇴치를 통해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이루기 위함이다. 제자훈련 선교에 몰두하면 할수록 내 열심 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열심 곧 ‘하나님의 수’에 감탄한다. 한반도와 지구촌 곳곳에 영적 언어 소통의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