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ICK
과월호 보기
낡고 오래되어 금이 간 물동이가 있었다. 주인은 물을 길러 갈 때마다 깨진 물동이를 챙겨갔다. 집에 도착하면 물은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온전한 항아리들 속에 가득 담긴 물을 바라볼 때마다 항아리는 미안했다. 그런데도 주인은 버리지 않았다.
어느 날, 물동이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왜 저를 버리지 않나요? 저는 소용 가치가 없는 물건인데요.” 주인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하루는 주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아라.”
길가에 예쁜 꽃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하며 싱싱하게 피어 있다. “주인님, 이 메마른 산길에 어떻게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 있나요?”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너의 깨어진 틈에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한때 나는 스스로를 깨진 물동이라 생각했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그저 굴러다니는 돌멩이쯤이라 여겼다. 이리저리 발에 채이며 짓밟혀도 당연했다. 숨죽이며 존재감 없이 살았다. 가진 것이라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보잘것없는 것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꼼짝 않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바로 그 보잘것없는 것을 사용하겠다고. 주님 손에 들려진 순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특별한 도구가 되었다. 이제 나는 보잘것없는 것을 사랑한다. 예전에 나는 보잘것없는 것만 헤아렸다. 이제 나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린다. 보잘것없는 것을 버리지 않고, 즐거이 사용하는 특별한 주님 덕분이다.
더글러스 마록의 ‘만일 네가’라는 글은 보잘것없는 것을 노래한다.
“만일 네가 산 위의 장송이 되지 못하거든 계곡의 자목이 되어라. 개울가에 자라서 누구나 사랑하는 나무가 되어라. 만일 나무가 되지 못하거든 떨기나무가 되어라. 만일 떨기나무가 되지 못하거든 작은 풀이 되어라. 그래서 거리를 아름답게 하여라. 만일 네가 작은 풀이 되지 못하거든 억새풀이라도 되어라. 물가에서 자라는 제일 좋은 억새풀이. 성공은 커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든지 가장 좋은 것이 되어라.”
보잘것없는 것이 주님 손에 들려지면, 가장 좋은 것이 된다.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기적을 일구어낸다. 그래서 나는 소박함과 모자람, 그리고 부족함을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