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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살며 견디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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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어요!” “저리 가.” “귀찮아, 내가 알아서 할 거라구요.” “내 인생이야, 엄마가 무슨 상관이냐고?” “제발 이래라 저래라 간섭 좀 하지 마세요.” “도대체 아빠가 나를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어요?” “아니거든요!” “맞거든요!” “잔소리 좀 그만해요!”
사춘기 자녀들의 아우성이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보내는 언어들처럼 생소하다. 해독도 불가능하다. 이유도 없다. 이유가 없으니 당하는 부모들은 억울하다. 반격이 시작된다. “이게 누구한테 말대꾸야? 너 지금 엄마 무시해? 시끄러워! 조용히 못해? 시키는 대로 해!” 그러나 야단쳐도 소리쳐도 소용이 없다. 오죽하면 “싸가지, 왕싸가지, 원수, 헐크. 럭비공, 조폭”이라 부르겠는가? 이유 없는 반항을 잠재우기 위한 한 아버지의 투쟁은 눈물겹다,
“저는 중3, 고2 두 아들을 두었습니다. 착한 아이들이었습니다. 말 잘 듣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들이 반항하더군요. 처음에는 큰 소리로 야단을 쳤죠. 말을 좀 듣는 듯하더니 차츰 효과가 약해졌습니다. 그래서 회초리를 사용했습니다. 소용없더라구요. 할 수 없이 야구방망이를 사용했습니다. 반응조차 없어요. 야구방망이로 맞으면서 끄떡없이 버티고 서 있는 아들을 보면서 얼마나 황당했는지요. 이제는 아들이 경찰에 신고할까봐 눈치만 봅니다. 차라리 어떤 때는 부모 노릇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투쟁은 좌절로, 좌절은 포기로 이어진다.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김두식의 저서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마다 죽기 전에 써야 할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이다. 즉 어렸을 때 지랄을 소비하지 못하면 어른이 돼서 언젠가는 지랄을 하게 되는데, 이때의 지랄은 어릴 때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다.
사춘기 자녀의 반항은 자기에게 주어진 지랄의 총량을 소비하고 있는 과정이다. 반항을 한다는 것은 아직 지랄해야 할 양이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내 자녀의 지랄 총량은 얼마인가 계산해 본다. 호르몬의 급격한 분비로 활발하게 지랄이 일어나는 사춘기에 제대로 지랄을 해야 한다. 일정한 총량만큼 반드시 쓰게 된다. 조용히 기다리며 끝까지 견디면, 저절로 잠잠해진다. 사춘기 대반란이 휩쓸고 간 자리에 한결 성숙해진 자녀가 기다리고 있다.